최근 수도권 아파트 시장에선 수개월 사이 실거래가격이 30% 안팎으로 내린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주택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최근 서울을 뺀 수도권 대부분을 비규제지역으로 풀었지만, 집값 내림세에 더욱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과거 집값 상승기에 정부가 규제를 찔끔찔끔 내놓으면서 시장 왜곡만 부추긴 선례가 있다”면서 “부동산 경기 침체가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막으려면 규제 완화가 시장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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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외곽 아파트 값 30% 가까이 내려

서울 노원구(-7.17%)와 도봉구(-7%)는 올 들어 아파트 값이 7% 넘게 내렸다. 최근 1~2년 사이 무주택 서민층의 주택 매수가 집중된 지역에서 부동산 경기 침체가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울 강북구 미아동 ‘SK북한산시티’ 전용면적 59㎡는 지난 7일 24층 매물이 5억6000만원에 팔렸다. 같은 면적 21층 매물이 4월 초 7억5300만원에 팔린 것과 비교하면 7개월 만에 26% 내렸다. 서울 구로구 개봉동 ‘현대아파트’ 전용 114㎡(8층)는 이달 초 8억5000만원에 매매 계약됐다. 작년 12월 초 18층 매물이 12억원에 팔렸는데 1년도 안 돼 실거래가가 29% 하락했다.

집값 하락 외에도 미분양 물량 증가, 경매 물건 급증 등 전형적인 부동산 시장 침체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9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4만1604가구로 작년 말(1만7710가구)의 2.3배 수준이다. 경매 시장 동향도 부동산 경기 침체를 잘 보여준다. 주택 소유자가 빚을 제때 못 갚아 지난달 경매를 신청한 건수(2648건)는 전월 대비 37.6% 급증했다. 이남수 신한은행 행당동 지점장은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대출을 활용해서 집을 산 사람들이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여러 방면에서 주택경기 경착륙 우려가 나타나지만, 정부는 아직 추가 규제 완화에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최근 서울 아파트 값 하락과 관련해 “정상적인 가격 수준인지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며 “서울을 규제지역에서 해제하는 것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소장은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7%대에 달하고, 최근 집값 추가 하락이 유력한 상황에서 누가 집을 사려고 하겠느냐”며 “정부가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부동산 경기 진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덜 내렸다” vs “대폭락은 없다”

최근의 집값 내림세가 얼마나 길게 이어지고, 언제쯤 변곡점이 나타날 것인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시장 상황은 초기 하락장의 모습으로 더 심한 침체가 닥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IMF 외환 위기나 글로벌 금융 위기 때 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은 작기 때문에 과도한 비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파트 투자는 사이클이다’ 등의 책을 낸 이현철 아파트사이클연구소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집값이) 평균적으로 40% 하락할 것이고, 하락장이 7년 정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밝혔다. 그는 “지금은 집값이 내렸다고 해도 집주인들이 반신반의하면서 여전히 버티고 있어 거래가 많지 않다”며 “이들이 버티기에서 매도로 급변하면, 하락 거래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부동산 팀장은 “단기간에 주택 경기가 반등하진 않겠지만, 서울과 수도권 요충지는 ‘대폭락’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15억원 이상 고가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이 재개되고, 금리 인상이 멈춘다는 신호가 감지되면 다시 주택 매수 수요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합수 건국대 교수는 “정부는 집값이 다시 불안해질 것을 우려해 ‘속도 조절’을 고민하지만, 이미 시장 수요가 얼어붙었기 때문에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며 “서울도 강남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으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