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재건(再建) 사업 첫 프로젝트 절차를 이르면 올해 중 시작할 것이다. 시급하면서도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국내 기업이 강점을 가진 조립식(모듈러) 주택, 이동식 병원을 최우선으로 공급하고 다양한 기술을 패키지로 묶는 스마트 시티도 전략적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신현종 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19일 본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계획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정부가 최대 1조달러(약 1300조원)로 추산되는 ‘우크라이나 재건’ 시장 참여 의사는 밝혀 왔지만, 구체적 시점과 계획까지 밝힌 것은 처음이다. 원 장관은 “다음 달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 회의 이후 국가 안보 차원의 의사 결정이 이뤄지고 나면 기재부 협의를 거쳐 연내 우크라이나에서 파일럿(시범)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이동식 병원, 난민들을 위한 주거·복지 시설을 먼저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 건설사들이 강점을 가진 모듈러 공법을 이용하면 매우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어 우크라이나 정부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원 장관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참여가 단순히 국내 기업들에 새로운 시장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의 국가 위상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게 되면, 피해 복구에 도움을 준 국가들은 EU 내에 강력한 우군을 확보하는 셈”이라며 “우크라이나 재정 사정을 감안할 때 재건 사업으로 당장 큰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G8 국가를 지향하는 한국 입장에서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주무 부처 장관으로 지난달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에 참석해 각국 움직임을 직접 확인한 원 장관은 우리의 최대 강점으로 ‘스마트시티’를 꼽는다. 스마트시티는 도시 기반 시설과 ICT(정보통신기술)를 접목해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높이는 미래 산업이다. 원 장관은 “한국은 관련 기술을 패키지로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최근 관계는?

“작년부터 꾸준히 협력 관계를 이어 왔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 인프라 부처와 국토부 간 차관급 화상회의 채널도 개설돼 꾸준히 회의를 하고 있는데, 이 회의에 민간 기업들도 참여시킬 계획이다. 4848개 재건 사업의 내용과 추정 비용 등이 담긴 리스트도 다른 국가들보다 한 달가량 먼저 제공받을 정도로 우호적이다.”

-실제 사업화를 위한 전략은.

“건설뿐 아니라 운영 노하우,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까지 통합해 이른바 ‘K인프라’로 수출할 계획이다.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3월 29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수미주(州) 트로스탸네츠에서 뼈대만 남은 건물과 불에 탄 차량들 사이로 한 구조대원이 혹시 남아 있을 수도 있는 폭발물을 찾고 있다. 러시아 국경에서 약 30㎞ 떨어진 이 마을은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이후 러시아 점령지였다가 최근 우크라이나가 탈환했다. /EPA 연합뉴스

-실제 성과도 있나.

“스마트시티 관련 기본 계획 수립과 타당성 검토 등을 지원하는 ‘K시티 네트워크’라는 사업에 우크라이나 중부에 위치한 우만을 포함시켰다. 최근엔 우크라이나 정부가 수도 키이우 등 다른 도시들의 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달라고 요청해 협의하는 중이다.”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시설이 있나.

재건 사업 리스트에는 도시 개발 외에 산업 단지, 철도, 공항, 상수도, 에너지, 전기차 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 사업들이 있다. 이런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두루 갖춘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전쟁을 딛고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 노하우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재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국의 움직임은 이미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해외 원조 기구를 앞세워 지원 방안을 발표했으며, 일본도 우크라이나 정부와 재건에 관한 ‘협력 각서’를 체결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록과 세계 최대 은행인 JP모건 등 글로벌 금융기관도 뛰어들고 있다.

-재건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가를 완전히 재설계한다는 관점에서 재건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나 지역 단위로 묶어서 재건 사업을 하는 것에 특히 관심이 많다. 우리는 수십 년에 걸쳐 신도시를 개발했고, 최근에는 스마트시티를 육성하고 있어 우크라이나 정부의 관심이 많다.”

그래픽=박상훈

-전략적 파트너 후보를 꼽자면.

“우크라이나 접경국인 폴란드, EU 내에서 가장 재정력과 발언권이 강한 독일을 최우선으로 염두에 두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생활권이 겹치는 튀르키예도 인력 확보 차원에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

-재건 시장이 ‘중동 붐’에 비견할 만한 기회인가.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농업 국가인 데다 리튬 등 지하자원도 풍부하기 때문에 재건 시장이 장기적으로 큰 기회인 것은 맞는다. 하지만 중동 오일 머니 같은 재원이 없을뿐더러, 전쟁으로 위험한 지역도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참여를 위해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자금 1680억원을 조성키로 했다. 이렇게 지원된 자금이 마중물 역할을 해 한국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 발주로 연결되는 구조다.

-재건 시장 참여를 서두르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재건 지원은 이미 국제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종전 후 본격적으로 시장이 열릴 때에 대비해 무상 원조나 차관, 기업 투자 등을 통해 미리 지분을 쌓아둬야 한다. 해외 국가들이 참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