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한때 '한국 전자 산업의 메카'라던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는 거리에서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었지만, 상당수 점포가 문을 내려 영업을 끝냈고, 임차인을 찾지 못해 빈 곳도 많았다. /고운호 기자

3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주변 좁은 골목길엔 ○○철공소, △△공구상 등의 간판을 단 점포 여러 곳이 녹슨 셔터문을 굳게 내린 채 방치돼 있었다. 세운상가 일대 상가들을 연결하기 위해 2017년 설치된 공중보행교는 30분 동안 딱 3명만 지나갔다. 한 카메라·영상 기기 가게 사장은 “역사 보존을 한다고 개발을 못 하게 했는데, 누구를 위한 보존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2006년 서울시가 발표한 ‘강북 부활 프로젝트’가 예정대로 실현됐다면, 세운상가 일대는 종묘와 남산을 잇는 1km의 녹지공원, K콘텐츠를 활용한 복합문화공간, 35층 안팎의 오피스 타운이 들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2011년 취임한 박원순 전 시장이 이듬해 세운상가 철거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며, 이런 구상을 무산시켰다. 이후 세운상가 일대는 1970년대 모습 그대로다.

일본 도쿄 마루노우치와 롯폰기힐스, 미국 뉴욕의 허드슨야드, 프랑스 파리의 리브고슈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이 낡은 도심을 복합 개발해 도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추진되다가 멈춰버린 대형 개발 프로젝트들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박원순 전 시장 재임 10년 동안 근대 역사 보존을 명목으로 개발을 억제하면서 ‘서울 도심 재생의 시계’는 멈춰버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뒷걸음친 도심 경쟁력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 복합 쇼핑몰. 이곳 6층은 전체 216개 점포 중 5곳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길 건너 동대문 굿모닝시티쇼핑몰도 상황은 비슷했다. ‘정상 영업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건물 내부가 어두컴컴했다. 에스컬레이터도 멈춰 있었다.

그래픽=백형선

서울 동대문 일대는 디자인·생산·유통·소비가 한곳에서 가능한 K패션의 중심으로, 아시아 패션 산업의 메카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패션 관련 산업들을 유치해 “동대문 일대를 세계적 패션 디자인 중심지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08년 착공돼 2014년 문을 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이후 이 계획은 중단되다시피 했다. 대신 박 전 시장은 DDP 일대 평화시장·광희시장 등 6개 의류 도매 시장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해 버렸다. ‘미래유산’으로 지정되면 건축물의 일부를 원형대로 남겨야 해, 개발 계획은 불가능했다. 2018년엔 창신동을 ‘서울 도시재생사업 1호’로 지정해 ‘봉제역사관’을 지었지만, 하루 10명도 찾지 않아 5년 만에 문을 닫기도 했다.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 지대식 사무국장은 “동대문 대형 쇼핑몰들은 각종 규제에 개발까지 막혀 공유 오피스나 온라인 쇼핑몰 사무실, 창고 하나 만들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멈춰 버린 도심 재생 프로젝트들

서울 한복판에 있는 ‘금싸라기 땅’인 용산정비창 부지(용산국제업무지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8년 8월 박 전 시장이 싱가포르를 방문한 자리에서 “용산과 여의도를 천지개벽하겠다”고 발언한 후 이들 지역 부동산이 들썩이자 개발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이 땅에 공공주택 1만 가구를 짓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로부터 “서울을 대표하는 업무지구를 지어야 할 노른자 땅에 공공주택이 웬말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11년간 공터로 - 2012년 사업이 무산된 이후 11년간 공터로 남아 있는 서울 마포구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 랜드마크’ 부지의 모습. /서울 마포구

마포구 상암동에 100층 이상 초고층 빌딩을 짓는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랜드마크’ 건설 사업도 10년 넘게 사업이 중단돼 있다. 잠실역 인근 종합운동장 부지를 통개발하는 잠실 마이스(MICE) 사업은 2014년 발표 후 10년 지나도록 아직 첫 삽을 못 뜨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사업자가 한화그룹 컨소시엄으로 정해졌지만 공공 기여를 두고 서울시와 협상 중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서울시는 사실상 도심 개발을 포기하면서 지금은 K콘텐츠를 담을 하드웨어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글로벌 도시로 서울시가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