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지은 지 60년 넘은 적산 가옥이 리모델링을 통해 공유 주방 ‘리틀 아씨시’로 재탄생했다. 이탈리아 소도시의 작은 성당 느낌을 주는 붉은 외벽과 우리나라 전통 너와지붕이 인상적이다. 건물을 설계한 김영배 드로잉웍스 소장은 기존 건물 재료를 최대한 살려 비용도 줄이고 옛것에서 묻어나는 독특한 감성과 아름다움을 살렸다. /김재경 작가

지난 7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고급주택이 즐비한 골목길을 따라 성북동미술관 쪽으로 100m쯤 걸어가니 길 모퉁이에 유럽에서 볼법한 작은 성당을 빼닮은 단층 건물이 나타났다. 붉은 벽돌과 조각난 목재를 층층히 쌓아올린 외관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났다. 마당 주위에는 약 4m 높이로 둥그런 회색 돌담이 둘러처져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니 성북동 주택가와 한양도성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 건물은 2020년 공유주방으로 리모델링한 ‘리틀 아씨시’(Little Assisi)다.

리틀 아씨시는 대지 281㎡, 연면적 76㎡로 원래 지은지 60년 넘은 일본식 적산가옥이었다. 하지만 이제 성북동의 작은 이탈리아로 불릴만큼 핫 플레이스로 재탄생했다. 리모델링 설계를 맡았던 김영배 드로잉웍스 소장은 “벽이나 구조, 자재에 묻은 세월의 흔적은 경우에 따라 건축가가 새로 설계한 디자인이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경우가 많다”며 “기존 건물에 보존할 만한 것들을 잘 살리면 신축보다 훨씬 가치 있는 건물이 된다”고 했다.

김 소장은 땅집고가 오는 19일 개강하는 ‘최소 비용으로 헌 건물, 새 건물 만들기 리모델링 2기’ 과정에서 강사로 나서 단독주택을 상업시설로 리모델링하는 노하우를 알려준다.

'리틀아씨시' 리모델링 개요

◇이탈리아 소도시 주택 닮은 건물

리틀 아씨시는 원래 별장용으로 지은 후 일반 주택으로 사용하다가 사진관, 꽃집 등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건축주는 집을 리모델링해 공유주방으로 수익을 내는 동시에 마을 주민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디자인은 건축주가 이탈리아 여행 당시 인상깊게 본 성당과 소도시 주택 분위기를 담아내고 싶었다.

김 소장은 건축주 요청대로 진입로가 있는 건물 전면부를 아씨시 스타일로 꾸몄다. 아씨시에 있는 프란치스코 대성당처럼 밝은 색감의 석재로 외벽을 마감한 것. 이를 위해 새 재료보다 기존 건물에 사용한 붉은 몽블랑 벽돌을 눈여겨봤다. 김 소장은 “성북동의 작은 이탈리아 분위기를 자아내되 너무 튀지 않게 계획했다”며 “오랜 시간을 머금은 기존 벽돌을 활용해 주변 건물과도 조화를 이루게 됐다”고 했다.

골목길에서 눈에 잘 띄이는 건물 측면 외벽은 잘게 부순 적삼목을 바닥부터 지붕까지 겹겹이 쌓아올려 너와지붕 형식으로 마감했다. 적삼목은 건축 재료로 쓰이면 회색으로 변하는데, 그 상태를 오랜 기간 유지하며 잘 변형되지 않는다. 외벽 창가 앞 작은 마당에는 조경 목적으로 기존 집 구들장을 일렬로 늘어뜨렸다.

건축주와 김 소장은 당초 건물이 워낙 노후해 지붕은 다시 증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김 소장은 천장을 뜯어보고 깜짝 놀랐다. 적산가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지붕틀이 잘 보존된 채 숨어있던 것. 그는 “지붕틀 상태가 튼튼하고 색감이나 디자인은 새로 재현하기도 어려워 그대로 살렸다”고 했다. 공유주방 천장에서 보이는 이 지붕틀은 내부 인테리어를 살리는 핵심 공간이 됐다. 김 소장은 지붕틀 틈 사이로 조명을 달고 고급스런 샹들리에도 설치했다. 여기에 건축주는 빈티지한 디자인의 가구와 집기를 직접 구비해 공간을 채웠다.

원래 있던 노란색 대문도 떼어내 마당 서쪽 벽에 붙여놨다. 골목길에서 보면 시선을 붙드는 디자인 포인트 역할을 하며 포토존으로도 활용하도록 한 것이다.

◇기존 재료 최대한 살려…공사기간은 6개월

리모델링 공사는 약 6개월 걸렸고 비용은 총 1억7000만원으로 평당 740만원쯤 들었다. 설계비, 감리비, 내부 조리기구 구입비 등으로 1억원을 더 지출했다. 현재 공유주방으로 운영하면서 월 평균 250만원 이상 수익이 난다. 리모델링 이전 12억원이던 건물과 대지의 매매시세는 현재 호가만 20억원대에 이른다.

김 소장은 “기존 건물에 쓰인 오래된 벽돌과 내부 목구조는 최신 재료를 구해 비슷한 느낌으로 작업해도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을 살릴 수 없다”며 “건물 기초가 부실하면 재료가 아까워도 신축해야 하는데 이 건물은 구조가 튼튼해 기존 재료를 활용한 독특한 디자인과 비용 절감이란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