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경기 오산시 청학동 오산세교2 A6블록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잭서포트(하중분산 지지대)가 설치돼 있다./뉴스1

1995년 15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꼽힌다. 불법 증축과 용도 변경이 직접적 원인이었지만, 잘못 설계·시공된 무량판 구조도 문제였다. 이후 한동안 국내 건설업계에서 무량판 설계는 금기시되다시피 했다.

무량판 구조는 2010년대 후반 들어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민간 건설사들 사이에서 지하 주차장 중심으로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땅을 깊이 팔 때 적용되는 ‘지하안전영향평가’ 규제가 강화되고 공사비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수익 확보를 위해 건설 원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무량판 구조를 쓰게 된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와 LH 아파트 철근 누락 사이에는 28년의 간극이 있지만, 무량판 구조에 관한 문제는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잘못된 구조 설계, 부실한 시공과 감리가 똑같이 되풀이된 것이다. 무량판 구조 자체는 결함이 없었지만 국내 건설 현장의 고질적 병폐인 ‘더 빨리’ ‘더 싸게’ 문화와 이권 카르텔에 편승한 부실 감리, 여기에 최근엔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중심 근로자 체계까지 더해지면서 무량판 구조는 또 한 번 ‘부실 시공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를 탓하기보다는 우리 건설 현장에 만연해 있는 잘못된 시스템을 손보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무량판, 원가 절감에 유리하지만 시공 어려워

무량(無梁)판은 말 그대로 ‘대들보가 없다’는 의미다. 기둥 상층부에 ‘ㅁ’ 또는 ‘田’ 형태 대들보를 올려 기초를 갖춘 후 천장을 얹는 라멘(기둥식) 구조와 달리 기둥 위에 바로 천장을 얹는 공법이다. 대들보 자재 두께(60㎝~1m)만큼의 높이를 시공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공간 효율성이 높고, 공사 기간도 짧다. 다만 주 철근들을 보강근으로 묶는 공정이 수작업이어서 시공이 까다로운 편이다.

최근 들어 LH와 민간 건설사들이 지하 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다시 채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부는 택배 배송 문제로 2018년 지하 주차장 층고를 2.3m에서 2.7m로 높이고, 싱크홀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지하를 10m 이상 굴착하는 공사에 대해 ‘지하안전영향평가’라는 제도를 의무화했다. 이 절차로 인해 4~5개월 정도 사업 기간이 늘어나게 됐다. 결국 건설업계는 공간 활용도가 높은 무량판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무량판 구조 자체는 선진 공법이지만 최근 각종 하자와 사고 때문에 이미지가 나빠졌다”며 “정작 개선해야 할 것은 구조가 아닌, 우리 건설 현장의 낡은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삼풍백화점 사고와 판박이

무량판 구조는 효율적이지만, 좁은 기둥으로 하중을 버텨야 하는 만큼 설계와 시공, 감리가 모두 제 역할을 해야 하는 까다로운 공법이다.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삼풍백화점의 붕괴도 이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린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불법 증축이었다. 하지만 당시 삼풍백화점은 보강 철근이 규정대로 설치되지 않고, 당초 구조 설계와 실제 설계 도면이 달랐던 것으로 당시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지난 4월 발생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와 LH아파트 부실 시공의 구조가 28년이 지난 현재 똑같이 반복된 것이다.

이번 LH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구조 설계’ 부실에 특히 관심이 쏠린다. 구조 설계는 건물에 가해지는 하중을 계산해 철근의 양과 두께, 위치, 콘크리트의 강도 같은 뼈대를 결정하는 핵심이자 기본인 공정이다. 하지만 무량판 지하 주차장 기둥에서 보강 철근이 빠진 LH 15개 아파트 단지 중 10개는 구조 계산을 잘못했거나 구조 계산 결과를 설계 도면에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

구조 설계가 부실한 이유로 현행 건축법의 허점과 재하청 구조가 꼽힌다. 건축법상 건축물 설계는 ‘건축사’ 자격증 소유자만 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LH와 같은 발주처는 건축 설계 용역을 건축사사무소에 일괄 발주하고, 건축사가 이를 구조 설계와 토목 설계, 전기 설계 등 전문 분야별로 하청을 주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이를 구조 설계 도면으로 옮기는 일은 다시 전문 업체에 재하청을 주는 경우도 많다.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장은 “건축물은 점차 고층화되고 복잡해지는데, 건축사에게만 총괄 설계 권한을 주는 법이 근본적 문제”라고 했다.

☞대들보 없는 무량(無梁)판 공법

아파트를 짓는 공법은 크게 무량판과 라멘(기둥식), 벽식으로 나눈다. 라멘은 기둥들 위에 수평의 보를 얹고 그 위에 천장을 올린다. 벽식은 벽면 자체로 천장을 지탱하는 것이다. 두 공법은 천장과 맞닿는 보와 벽면의 면적이 넓어 하중을 분산시킬 수 있다. 반면 무량판은 기둥 위에 천장을 바로 얹는 방식이다. 하중이 기둥 부위에 집중되는 단점이 있지만,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공법은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에도 적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