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입주를 목표로 진행 중이던 강원 삼척시의 한 임대아파트 공사가 이달 초 갑자기 중단됐다. 공사 진척도가 75%로 기본 골조 공사가 마무리되고, 내부 공사를 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공사를 하던 S건설이 급등한 원자재 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도급 업체에 공사비도 지급할 수 없게 되자 현장이 멈춰버린 것이다. 분양 계약까지 마치고 이곳에 들어갈 예정이던 200여 가구는 이사 계획이 틀어진 것은 물론, 건설사가 부담하기로 했던 중도금 이자마저 떠안게 되면서 패닉에 빠졌다. 회사 관계자는 “공사비 감당이 안 돼 회사가 사실상 부도 직전”이라며 “직원들도 대부분 퇴사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 사업장의 분양 보증을 한 HUG는 “중도금 이자는 보증 범위에 들어있지 않아 입주예정자들이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HUG는 입주 예정자들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줄 예정이지만, 입주예정자들은 입주 계획이 어긋나면서 큰 혼란을 겪게 됐다.

중소·중견 건설사를 중심으로 공사를 포기하거나 입주 일정을 연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원자재 값 상승이 2년 이상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위축으로 건설업계 돈 가뭄이 이어지고, 고금리 여파로 건설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여기에 국내 부동산은 선분양 시장이라, 시공사 입장에서 공사 도중 원자재 값이 올라도 이를 반영할 길이 막혀 있다. 지방 건설업계 관계자는 “30년 이상 공사 현장에 있지만, 요즘 같은 위기는 처음”이라며 “IMF나 글로벌 금융 위기도 2년 견디면 상황이 회복됐는데, 지금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진경
그래픽=양진경

◇75% 짓고도 포기…곳곳서 공사 지연도

공사 중단까지는 아니지만, 원자재 값 인상으로 공사가 지연돼 입주예정자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다. 대우산업개발이 시공하는 충남 천안시 ‘봉명역 이안 센트럴’은 당초 올해 6월이 입주 예정이었으나, 원자재 값 상승으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올해 11월로 준공이 5개월이나 밀렸다. 설상가상으로 시공사인 대우산업개발은 이달 초 자금난에 경영진의 비위 사건까지 터지면서 버티지 못하고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을 신청했다. 입주예정자들은 입주 지연에 따른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 건설사를 상대로 지체보상금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이 외에도 경기 용인시 ‘보평역 서희스타힐스 리버파크’, 충북 진천군 ‘풍림아이원 트리니움’ 등도 비슷한 사유로 입주 예정일이 3개월 이상 연기됐다.

공사비를 조달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공사비까지 급등하자 중소·중견 건설사들 중 주택 인허가를 받아놓고도 착공을 못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전국 주택 인허가 실적은 18만9213가구로 1년 전(25만9759가구)보다 27% 줄었다. 반면 주택 착공 실적은 9만2490가구로 작년 상반기(18만8449가구)보다 50.9%나 감소했다. 인허가를 받고도 첫 삽을 못 뜬 곳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착공을 미루다, 서너 달 후에 다시 공사비 견적을 뽑아보면 비용이 수억원씩 늘어난다”며 “지금은 공사를 안 하고 버티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착공 2~3년 뒤 입주가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2~3년 뒤 주택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며 “나중에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집값이 뛸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 “오른 물가, 공사비에 연동해 달라”

원재자 가격과 인건비 등을 종합해 산출하는 ‘건설 공사비 지수’는 작년에 비해 2.6%, 2년 전에 비해선 14.6% 올랐다. 공사비 급등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쌍용C&E와 성신양회는 최근 시멘트 가격을 14% 인상했고, 한일시멘트도 9월부터 가격을 약 13% 올리기로 했다. 이 때문에 건설업계에선 “원자재 값 인상 등 물가 상승분이라도 공사비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공공공사는 국가계약법에 따라 3% 이상 물가 변동 시 계약금액 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간 공사는 이 같은 조항이 없다. 이 때문에 시공사(건설사)가 발주처(시행사 또는 조합)에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공사비 조정을 요구해도 반영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오히려 시공 계약 당시 물가 변동을 반영하지 않겠다고 명시적으로 계약서에 쓰는 경우도 많다.

국토교통부는 이 때문에 최근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건설사와 발주처가 맺는 표준도급계약서 안에 ‘주요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연동을 위한 비율’과 ‘물가변동 적용기준(품목조정률 또는 지수조정률)’ 항목을 신설해 물가상승분을 공사비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표준도급계약서는 권고 사항에 불과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민간공사에선 표준도급계약서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건설산업기본법 같은 법률에 물가 변동에 따라 공사비를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공사비 현실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