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접 감리를 맡은 공사장의 82%에서 법이 정한 감리 인원 정원도 채우지 않고 공사를 진행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19명이 배치되어야 하는 공사 현장에 4분의 1도 안되는 4명만 투입한 현장도 있었다. 최근 지하 주차장 철근 누락이 확인된 단지 중 자체 감리를 한 4곳은 모두 필요한 감리 인원을 배치하지 않은 채 공사를 해온 사실도 확인됐다.

16일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실이 LH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7월 LH가 자체 감리를 맡은 공사 현장은 104곳이다. 이 가운데 85곳(81.7%)은 법이 정한 감리 정원조차 채우지 못한 상태로 공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리는 공사 단계마다 설계대로 시공되는지 확인하고, 이와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에는 시정 또는 공사 중지 조치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에 따라 건설기술진흥법(건진법) 시행령은 공사비와 공사 종류에 따라 배치해야 하는 적정 감리 인원을 정해 놓았다. 감리인원이 법적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아예 공사를 시작할 수 없고, 계획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LH 자체 감리 현장 104곳에 필요한 총인원 920명 중 현장에 투입된 인원은 566명에 불과했다. 법 규정상 인력의 61.6%만 채웠다는 의미다. 예컨대 시흥장현 A-3 아파트 건설공사 12공구의 적정 감독자 배치 인원은 18.90명이었지만, 실제로 배치된 감독자는 4.25명으로 필수 인원의 4분의 1도 못 채웠다. 남양주별내 A1-1 아파트 건설공사 17공구도 22.10명이 배치돼야 하지만 실제는 절반을 조금 넘는 12.90명만 배치됐다.

특히 최근 철근 누락이 확인된 아파트 단지 15곳 중 LH가 자체 감리한 사업장 4곳은 모두 필요한 감리 인원을 배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예컨대 수원당수 A-3단지는 법정 배치 기준이 8.30명이었지만, 현장에는 4.94명이 투입됐다. 광주선운2 A-2단지는 5.26명(법정 기준 8.90명), 양산사송 A-2는 5.28명(9.10명), 수서역세권 A-3은 7.20명(9.40명)이 배치되는 데 그쳤다.

LH가 이처럼 감리 인력 법정 기준을 대대적으로 어겼지만, 실제 LH가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경우는 없다고 한다. 감리 계획을 의무적으로 수립해 제출하고, 이를 어겼을 때 처벌하는 규정이 2019년 7월에 신설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위반 사실이 확인된 85곳은 모두 규정 신설 이전에 사업이 시행돼 이 법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 LH 관계자는 “감독 인원 현장배치가 의무화 이전에 발주된 현장들에 대해서는 외부감리 전환, 건설기술자 추가 채용 등을 통해 적극적인 해소 노력을 추진하고 있으며 내년 상반기 내 법정 인력 100%가 배치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처벌 규정이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법정 감리 인원이란 기준을 무시한 채 공사를 해온 LH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주택업계 관계자는 “처벌만 받지 않으면 법 규정을 무시해도 된다는 LH의 안전 불감증과 무책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위반 시 처벌 수준이 과태료 2000만원에 그치는 것도 감리의 중요성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경찰은 ‘철근 누락’과 관련해 LH 진주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LH가 철근 누락 아파트의 설계·감리 업체와 내부 관련자를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지 12일 만이다.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이날 광주 선운2지구 철근 누락 수사를 위해 경남 진주 LH 본사를 비롯한 4곳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했다. 경찰은 철근 누락이 확인된 아파트 단지들의 소재지별로 나눠 수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