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등 노후 계획도시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는 특별법에 따라 현재 200% 안팎인 용적률(토지 면적 대비 층별 건축 면적 총합의 비율)을 최대 750%까지 높일 수 있게 된다. 단순 계산으로 20층짜리 아파트를 헐고 약 70층까지 높여 지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여러 단지를 묶어서 재건축하면 안전 진단도 면제받을 수 있다. 또 정부는 이 같은 특별법 적용 대상 지역을 당초 51곳에서 108곳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오는 4월 ‘노후 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구체적 적용 방안을 담은 시행령을 31일 발표했다. 오는 3월 12일까지 국민 의견을 청취한 뒤, ‘노후 계획도시 특별법’과 함께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시행령에는 특별법이 적용될 범위와 특별정비구역 지정 요건, 건축 규제 완화 방안 등이 담겼다. 지난해 특별법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엔 전국 51곳 103만 가구가 적용 대상이었지만, 이번에 인접 지역과 묶어서 함께 개발할 수 있는 곳까지 포함하면서 대상이 전국 108곳, 215만 가구로 늘었다.

그래픽=정인성

재건축 사업은 넓은 도로를 끼고 있는 주거 단지나 지하철역 반경 500m 이내 역세권, 상업·업무지구 등 인구 밀집도가 높은 지역을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해 우선적으로 진행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올 연말까지 1기 신도시 5곳에서 각 1~2곳씩 선도 구역을 지정해 먼저 재건축 사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용적률을 법적 상한선의 1.5배까지 적용받을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입주해 있는 3종 일반주거지역의 용적률 상한선은 300%인데 최대 450%를 적용받을 수 있다. 아파트와 상업용 건축물이 혼재된 준(準)주거지역 용적률 상한선은 500%에서 750%로 높아진다. 일반주거지에 있는 20층 아파트가 준주거지역으로 바뀌고, 특별법 인센티브까지 받으면 최대 약 70층까지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통 등을 감안하면 무조건 고밀도 개발을 하기는 어려운 만큼, 40~50층 수준의 재건축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정순우 기자 A3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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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계획도시 특별법의 세부 사항을 담은 시행령이 공개되면서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1기 신도시 5곳의 재건축 사업에는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당초 정부는 1기 신도시 노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을 추진했지만 타 지역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전국 모든 대규모 택지지구들이 법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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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우선 1기 신도시에서 재건축 성공 사례를 만든 후,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올해 중 1기 신도시에서 가장 먼저 재건축에 들어갈 선도지구 지정 절차를 마치고, 2026년까지 관련 계획 수립 및 인허가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후 2027년 착공, 2030년 첫 입주를 시작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용적률 상향 등의 인센티브를 내놓은 것도 빠른 사업 추진을 위한 당근이다. 하지만 주민 동의, 단지 간 입장 차, 급등한 사업 비용 등 풀어야 할 문제도 많다. 지나친 고밀도 개발에 대한 우려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특별구역 되면 용적률·棟 간격 완화

노후 계획도시 특별법에 따른 재건축 사업은 1기 신도시에서부터 시작한다. 오는 4월 특별법과 시행령이 발효되면 1기 신도시를 관할하는 성남시·고양시 등 기초 지자체 5곳은 연말까지 도로·공원 등 기반 시설 계획, 개발 밀도 등을 포함한 기본계획을 수립해 경기도 승인을 받게 된다. 신도시 전체의 전력, 상하수도, 도로 등 인프라 용량을 고려해 어느 수준까지 주택 수를 늘릴 수 있으며,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하려면 어떤 기반 시설이 추가로 설치돼야 하는지 등이 이 계획에 담긴다. 이와 함께 지역별로 선도지구 공모 절차를 6월 시작해 연말까지 최소한 한 곳씩 선정하게 된다. 주민 참여도가 높고 주택 노후도가 심각하면서 기반 시설이나 공공 시설을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이 큰 단지들이 우선적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선도지구 지정 이후, 각 지자체는 내년 중 재건축을 위한 특별정비구역 지정과 세부적인 정비계획 수립 작업을 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단지별 용적률과 층수, 공공 기여 등 세부 사항이 결정된다. 선도지구로 뽑히지 못한 아파트 단지는 특별정비구역 추가 모집 때 신청할 수 있다. 각 지자체는 재건축이 몰리지 않도록 특별정비구역 지역과 일정을 조율하게 된다.

특별정비구역이 되면 각종 건축 규제가 완화된다. 용적률을 법적 상한선의 1.5배까지 적용받을 수 있으며 일조권 확보를 위한 아파트 동(棟) 간 간격도 기존 ‘건물 높이의 80%’에서 ‘건물 높이의 50%’로 완화된다. 같은 공간에 좀 더 빽빽하게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는 의미다.

◇통합 재건축은 안전 진단 면제

시행령은 2개 이상 단지가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일정 비율 이상의 공공 기여를 하면 안전 진단을 사실상 면제하기로 했다. 최근 정부가 안전 진단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데, 노후 계획도시에선 아예 안전 진단을 받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정된 구역에 통합 재건축을 할 단지가 없는 경우에는 한 개의 단지도 특별구역으로 지정해 안전 진단 면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며 “재건축 사업에 속도를 내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용적률 완화나 공공 기여에 대한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왔지만, 실제 지자체에서 어떻게 적용하느냐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지금도 1기 신도시 주민들 사이에서 재건축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있어 주민 의견 수렴과 단지 간 이해관계 조율 등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가능성이 있다”며 “고밀도 개발에 따른 교통 혼잡이나 일조권 침해 등의 문제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