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북서쪽으로 250km거리에 있는 도야마(富山)시는 2005년만 해도 ‘소멸 위기’를 걱정하던 도시였다. 고령화가 진행되며 도심 인구밀도는 1ha(헥타르)당 40.3명으로, 전국 광역 지자체 중 가장 낮았다. 소매 판매액은 10년 전보다 40% 정도 줄었다. 도야마시가 택한 ‘생존책’은 ‘콤팩트 마치즈쿠리(マチヅクリ·콤팩트 마을 만들기)’였다. 교통망을 개편하고 역을 중심으로 1분 거리에 쇼핑몰과 생활 편의 시설을 집중 배치했다. 7곳으로 흩어졌던 거주 공간을 한데 모았다. 도심 기능을 한데 모으자 도시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현재 도야마시는 일본 광역 지자체 47곳 중 가구당 실질 소득 7위를 기록 중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산과 인구 유출 등 도시 소멸 위기를 막기 위해 부동산 개발 업계에선 최근 ‘콤팩트 시티(기능 집약 도시)’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도심 중심부에 주거 및 상업 시설을 밀집시켜 도야마시처럼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픽=김하경

◇규제 개혁으로 도심 재창조한 일본

고령화가 우리보다 앞서 진행된 일본은 대규모 복합 개발 사업으로 도심 곳곳이 천지개벽 중이다. 작년 11월 문을 연 도쿄 미나토구의 ‘아자부다이힐스’가 대표적이다. 낡은 도심을 높이 330m짜리 모리JP타워(오피스)를 비롯해 초고층 빌딩 세 동이 들어선 복합 단지로 탈바꿈시켰다. 1400가구가 거주하는 시설에 쇼핑몰·병원은 물론 학교·미술관까지 입주해 걸어서 10분 이내에 ‘직(work)·주(live)·락(play)’이 모두 해결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4년 도시 개발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철폐한 ‘국가 전략 특구’ 제도를 마련해 압축적 도시 개발을 장려하고 있다. 아자부다이힐스는 2017년 특구로 지정돼 용적률이 당초 350%에서 990%까지 올라갔다.

도쿄역 야에스 지구에 있는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 빌딩도 빼놓을 수 없다. 45층 건물에 업무 및 상업 시설뿐 아니라 초등학교와 유치원, 버스 터미널 등이 모두 들어가 있다. 40~45층에는 5성급 호텔인 ‘불가리 호텔’이 들어서 있다. 이 밖에 미국 뉴욕의 ‘허드슨 야드’, 영화 ‘해리포터’ 촬영지로 유명한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 등이 대표적 콤팩트 시티로 꼽힌다.

그래픽=김하경

◇‘콤팩트 시티’ 이제 막 걸음마 뗀 한국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최근에야 콤팩트 시티 개발이 조금씩 진행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한국판 ‘콤팩트 시티’라 할 수 있는 ‘공간혁신구역’ 선도 사업 후보지 16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토지의 건축물 허용 용도와 건폐율·용적률 규제로부터 자유롭고, 융복합적 도시 개발이 가능한 특례 구역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양재역·김포공항역·청량리역·독산공군부대 일대 등 4곳이 후보지로 선정됐다. 이번에 선정된 지역은 관할 지자체가 구체적인 개발 계획을 담은 ‘공간 재구조화 계획’을 수립하고,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절차를 거쳐 공간혁신구역으로 최종 지정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서울시는 ‘금싸라기 땅’이라는 용산 정비창 용지(50만㎡)를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용적률을 최고 1700%까지 허용해 100층 안팎 건물을 짓고, 업무·주거·여가가 모두 가능한 세계 최대 규모의 수직 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경기도는 지자체와 경기주택도시공사(GH) 주도로 용인시 마북동·보정동 일원에 첨단산업·주거·문화 등 복합 기능을 갖춘 ‘플랫폼 도시’ 개발을 추진 중이며, 안양시 인덕원에도 스타트업 단지와 창업 지원 주택, 복합 상업 공간을 한데 묶은 도심 복합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김세용 GH 사장은 “흩어져 있던 기능들을 한데 묶어 도시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콤팩트 시티 확산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한 사례를 발굴하는 ‘2024 콤팩트 시티 대상’ 시상식이 다음 달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compactcityaward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