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들. /뉴스1

압구정과 성수, 잠실, 여의도 등 한강을 낀 서울 인기 주거지에서 50층 이상으로 재건축 아파트 설계를 변경하는 단지가 늘고 있다. 층수를 높일수록 재건축 이후 아파트 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단지가 한강 조망권을 독점하면서 한강변 고가 단지로의 수요 쏠림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1일 정비 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압구정 2구역(신현대 9·11·12차)’ 재건축 조합이 최근 조합원 1552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0.6%가 ‘최고 70층’을 선택했다. 최고 49층을 선택한 사람은 18.8%에 그쳤다. 압구정 2구역은 지난달 최고 층수를 70층으로 한 정비 계획 변경안이 강남구 의회의 의견 청취 절차를 통과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설계에 대한 조합원 선호도를 다시 확인하는 차원에서 진행됐다.

지난해 서울시가 한강변 ‘35층 제한’을 풀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적용할 경우 50층 이상도 허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일부 재건축 조합에서 초고층으로 설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압구정 4구역(현대 8차, 한양 3·4·6차)’과 ‘압구정 5구역(한양 1·2차)’도 기존 49층에서 최고 69~70층으로 층수를 높이는 정비 계획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성동구 성수동에선 ‘성수 4지구’가 77층 초고층 설계를 확정했고, ‘성수 3지구’도 최근 50층 이상 초고층 건립을 의결했다. 이 밖에 송파구 잠실동 ‘잠실 주공 5단지’(70층), 영등포구 여의도동 ‘시범’(65층), ‘진주’(58층) 등도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아파트 단지들에선 초고층 재건축이 한강 조망권 확보에 유리하고, 집값 상승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압구정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특정 단지만 초고층으로 올라가면 나머지 단지는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평가될 수 있다는 우려에 너도나도 초고층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높이 지을수록 공사비가 천정부지로 뛰어 조합원 분담금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50층 이상 초고층은 강풍이나 지진에 견딜 수 있는 고강도 자재를 사용해야 하고, 지하도 더 깊게 파야 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인허가도 까다롭고, 공사 기간도 최소 1년 이상 늘어나 전체 사업비가 배(倍)로 뛸 수도 있다”고 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향후 공사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재건축 자체가 어그러져 초고층 설계를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