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약 15%를 차지하며 일자리 창출 효과와 후방 산업 파급 효과가 커 바닥 경기의 잣대로 불리던 건설업이 크게 휘청이고 있다. 특히 건설업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중소 건설사들이 하나둘씩 무너지면서 영세 협력업체들과 대형 건설사들로 영향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건설사에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 준 신탁사, 은행, 증권사 등 금융업계로 부실이 전이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또 어려워진 건설사들이 신규 채용마저 줄이면서 올 1월 건설업 일자리 수는 1년 전보다 17만명 가까이 급감했다. 이 중 청년 일자리도 6만개 넘게 사라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침체한 내수 경기 회복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최근 건설업 붕괴 우려를 부르는 진원지는 중견 건설사들의 잇단 법정관리 신청이다.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법정관리를 신청한 중견 건설사만 따져도 신동아건설(시공능력평가 58위), 삼부토건(71위), 대저건설(103위), 삼정기업(114위), 안강건설(116위), 벽산엔지니어링(180위) 등 6곳에 달한다. 2022년 하반기 이후 지속된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 경색, 지방 주택 경기 침체 등 건설업을 옥죄는 각종 악재가 해소되지 못한 탓이다. 실제로 중견 건설사들이 지난해 공사를 진행하고도 받지 못한 공사비는 12조원에 육박해 2년 전과 비교해 40% 가까이 급증했다. 지금까지는 빚을 내 외상으로 공사를 진행하며 버텨왔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법정관리나 부도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도권 건설사까지 자금난… 일자리 17만개 줄었다
작년까지는 지역 중소 건설사들 위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지만, 올해는 업력이 길거나 입지가 탄탄했던 수도권 중견 건설사들까지 유동성 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줄도산이 현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공포감이 번지는 이유다. 올해도 건설 투자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급등한 공사비는 안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지방 주택 미분양도 계속 쌓여가고 있다. 특히 공사를 진행하고도 받지 못한 미수금이 중견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공사하고 못 받은 돈 2년 새 40% 늘어
9일 본지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시공능력평가 11~100위 중견 건설사 가운데 분기별 공시를 하는 37곳의 작년 9월 말 기준 공사 미수금과 미청구 공사비는 총 11조7183억원에 달했다. 이는 2023년 말(9조2902억원)보다 26.1%, 2022년 말(8조4179억원)과 비교해서는 39.2% 급증한 금액이다. 공사 미수금은 건설사가 공사를 진행하고 발주처에 대금을 청구했는데도 받지 못한 돈을 뜻하고, 미청구 공사비는 공사는 했지만 발주처에 아직 청구하지 못한 금액을 의미한다. 보통 자재값이나 인건비가 급등해 예상 외의 공사비가 선(先)투입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 같은 외상 공사비는 건설 경기가 좋을 때는 향후 수익으로 돌아오지만, 지금처럼 미분양이 쌓이고 공사비가 급등하는 시기에는 회수가 어려운 ‘악성 채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지방에 사업장이 많은 중견 건설사의 경우 미수금이 쌓여 자금난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법정관리를 선택한 기업 가운데 회사 규모가 가장 큰 신동아건설이다. 신동아건설의 공사 미수금은 2020년 719억원에서 2023년 2146억원으로 3년 만에 3배 가까이 폭증했다. 신동아건설이 시공에 참여하던 경남 진주시 신진주역세권 타운하우스와 경기 의정부시 주상복합 등에서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한 여파다. 지난해 영업이익 181억원을 기록했으나, 미수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어음 60억원을 막지 못해 흑자 도산으로 이어졌다.
현재 건설사 상당수는 돈을 벌어 이자도 못 갚는 ‘좀비 기업’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는 건설사(건설 외감기업) 2292곳 가운데 이자보상배율 1 미만 업체는 2023년 기준 1089개사로 절반(47.5%) 가까운 수준이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1 미만이면 대출이자도 갚지 못한다는 의미다.
◇건설사 도산에 청년 일자리 37% 급감
문제는 올해도 나아질 기미는커녕 더욱 악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2021년 이후 치솟은 공사비가 공사 현장에 실시간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2~3년 전 계약 당시 받기로 했던 공사비와 급격히 오른 공사비의 차액은 작년 연말부터 순차적으로 건설사 회계 장부에 손실로 잡히기 시작했다.
건설사들이 고꾸라지면서 일자리는 급감하고 있다. 지난 1월 기준 전체 건설업 취업자는 1년 전과 비교해 16만9000명 줄었다. 1년 전 약 209만명에서 192만1000명으로 8% 급감한 것이다. 2013년 이후 감소 폭이 가장 컸다. 특히 청년 일자리 타격이 심각했다. 15~29세 청년층 건설업 취업자 수는 10만5000명으로 1년 전(16만6000명)보다 6만1000명(36.7%)이나 급감했다.
건설사 도산과 일자리 급감의 배경엔 건설 투자액 감소가 있다. 지난해 국내 건설 투자액은 전년 대비 2.7% 감소했는데, 국내 총생산(GDP) 성장률을 0.4%포인트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GDP 성장률이 예상보다 낮은 2.0%에 그치는 데 건설 투자 부진이 결정적이었단 얘기다. 올해는 건설 투자가 2.8%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투자가 줄면서 건축 착공 물량은 2021년 이후 3년 연속 내리막이다. 1월 기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2872가구로 11년 3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건설업 불황이 서민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가계 소득을 악화시켜 내수 회복까지 어렵게 한다”며 “경제 전반을 감안해 건설사 줄도산을 막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