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에게 박테리아를 집어넣어 매년 4억 명이 감염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 질병인 뎅기열을 막을 수 있다는 획기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비영리기구인 세계모기프로그램(WMP)은 지난 26일(현지 시각) “인도네시아에서 월바키아 세균이 있는 모기를 퍼뜨려 뎅기열 환자 발생률을 77%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뎅기열은 모기가 옮기는 뎅기 바이러스가 유발하는데, 고열과 극심한 두통을 일으켜 2만5000여명이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월바키아균에 감염된 모기는 뎅기열 바이러스를 옮기지 못한다.
영국 리버풀 열대의학대의 필립 맥콜 교수는 “정식으로 연구 자료를 모두 확인해봐야겠지만 77% 감소는 정말 대단한 결과”라며 “이는 (뎅기열 박멸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갖게 한다”고 평가했다.
◇뎅기열 환자 발생 4분의 1로 줄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0년간 기후변화와 모기 서식지로 인간이 진입하면서 뎅기열 환자가 30배나 늘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에서도 매년 700만명 이상 환자가 발생한다.
인도네시아 가자 마다대의 아디 우타리니 교수와 미국 UC버클리의 니컬러스 주얼 교수 공동 연구진은 40만명이 사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24개 지역을 대상으로 월바키아균의 뎅기열 감소 효과를 실험했다.
12곳에는 월바키아균을 감염시킨 모기를 방사하고, 다른 12곳과 뎅기열 환자 발생률을 비교했다. 실험 기간 뎅기열 환자 400여명이 발생했다. 대부분 어린이였다.
연구진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 2주까지 환자가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월바키아균을 넣은 모기를 방사한 곳은 뎅기열 환자가 다른 곳보다 4분의 1로 줄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지난 2016년부터 연구를 시작했으며, 코로나 사태로 예상보다 몇 개월 앞서 종료했다. 하지만 이번 결과만으로도 전 세계에 이 기술을 보급하기에 충분한 입증이 됐다고 밝혔다.
◇10년 내 10억 명 사는 곳으로 확대
월바키아균은 잠자리와 나방, 초파리 등 곤충의 60%에 감염되는 세균이다. 원래 모기에는 감염되지 않는데 1920년대 하버드대의 하수관에서 월바키아균에 감염된 모기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호주 모나시대의 스콧 오닐 교수는 1990년대부터 뎅기열을 옮기는 이집트숲모기에게 월바키아균을 집어넣어 뎅기열을 차단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2018년 호주에서 월바키아균을 넣은 모기 400만 마리를 풀어 뎅기열이 매우 감소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하지만 당시 연구는 비교 대상이 없었고, 호주는 동남아시아나 남미보다 뎅기열 발생 자체가 적어 이번 결과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세계모기프로그램은 앞으로 5년간 7500만 명이 사는 지역에서 월바키아 모기를 방사하겠다고 밝혔다. 10년 안에는 인구 10억명이 월바키아 모기의 혜택을 보도록 할 계획이다.
미국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과 영국 웰컴 트러스트, 인도네시아 타히자 재단 등이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불임 모기 방사
이집트숲모기는 뎅기열 외에도 황열병 바이러스와 치쿤구니아열 바이러스, 신생아에서 두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는 소두증(小頭症)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도 옮긴다. 살충제를 뿌려도 효과가 일시적이고 저항력을 가진 모기까지 나와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지난 18일 공청회에서 키스 제도에 이른바 ‘불임(不任)’ 모기를 방사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영국 옥시텍사는 이집트숲모기 수컷에 불임 유전자를 넣어 방사할 계획이다.
불임 유전자를 가진 수컷이 자연에 방사돼 야생 암컷과 짝짓기를 하면 나중에 태어난 암컷 애벌레는 성충으로 자라지 못하고 죽는다. 수컷은 정상으로 자라지만 사람 피를 빨지도 않고 암컷이 없으면 자손을 퍼뜨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