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우주정거장의 우주인들. 사실상 무중력 상태에서 사람도 물건도 둥둥 떠 다닌다./NASA

영화를 보면 우주정거장에 홀로 지낸 우주인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과학자들이 우주인의 뇌를 분석했더니 정말 우주에 오래 있으면 형태가 달라져 있었다. 뇌가 이상해지지는 않고 인체가 우주에 적응하기 위해 뇌기능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벨기에 앤트워프대의 플로리스 부이츠 교수 연구진은 지난 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러시아 우주인 11명의 뇌영상을 분석했더니 운동기능과 관련된 세 영역에서 회백질이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뇌가 우주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운동기능을 조절하는 뇌세포를 재배치한 것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른바 ‘뇌가소성’이다. 과거에는 뇌가 성장을 다 하면 그대로 안정된다고 생각했으나 최근에는 외부 자극이나 학습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고 밝혀졌다.

◇운동 관장하는 3군데 증가

연구진은 우주에서 평균 171일 동안 체류한 러시아 우주인 11명을 대상으로 우주여행 전후와 지구 귀환 후 7개월이 지났을 때 각각 뇌영상을 촬영했다.

우주에서 뇌의 변화. 왼쪽 영상은 운동기능을 관장하는 일차운동피질(위), 기저핵(가운데), 소뇌(아래) 세 영역이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오른쪽 영상은 뇌척수액이 아래쪽(녹색)이 증가하고 위쪽(붉은색)은 감소한 것을 보여준다./사이언스 어드밴스

분석 결과, 우주인의 뇌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포착됐다. 뇌에서 근육으로 운동신호를 보내는 일차운동피질, 평형감각과 운동기능을 관장하는 소뇌, 운동을 시작하고 부드럽게 하는 기저핵 등 세 군데가 증가했다. 이 같은 변화는 지구로 온 지 7개월이 지나도 유지됐다.

우주정거장에 있는 우주인은 가장 먼저 무중력 상태에 적응해야 한다. 인체 평형을 유지하는 전정기관도 소용이 없어 위아래로 움직이는 방법부터 새로 배운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뇌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추정했다.

부이츠 교수는 “우주에서 가장 큰 차이는 중력이 없다는 점”이라며 “인체는 무중력에서 제대로 움직이는 방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고 밝혔다.

◇뇌척수액 재배치, 시력 손상 유발

뇌를 감싸는 뇌척수액의 분포도 달라졌다. 뇌 아래쪽은 양이 늘고 위쪽은 줄었다. 그 결과 뇌가 두개골 위로 밀려 올라갔다. 이는 뇌척수액이 들어 있는 뇌실을 확장시켰다. 연구진은 이 같은 변화가 우주여행 뒤에 시력이 크게 손상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했다.

국제우주정거장의 우주인이 시력 검사를 하고 있다. 우주에서 오래 체류하면 시력이 크게 손상된다./NASA

이번 연구결과는 러시아 연방우주청(Roscosmos)과 유럽우주국(ESA)가 우주여행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부작용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부이츠 교수는 “우주인의 임무는 물론, 앞으로 우주에서 잠시 머물 우주관광객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