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를 공격하는 항체 상상도. 미국 제넨텍은 항체 치료제 토실리주맙이 코로나 입원환자의 면역 과잉 반응을 막는다고 밝혔다./게티이미지

항체 치료제가 코로나 환자의 증세가 악화되지 않도록 막아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발한 면역 과잉 반응을 억제해 입원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쓰는 상황까지 병세가 악화되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자체를 차단하는 항체 치료제와 함께 코로나 전쟁의 새로운 항체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증세 악화 환자 44%나 감소

미국 제넨텍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돼 입원한 환자 389명 중 항체 치료제인 토실리주맙을 투여한 사람들은 인공호흡기를 쓸 정도로 증세가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숫자가 다른 환자보다 44%나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과는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됐으며, 학술 논문으로 과학자들의 정식 심사를 받지는 않았다.

제넨텍에 따르면 토실리주맙 투여 환자 중 12.2%가 인공호흡기를 쓸 정도로 증세가 악화되거나 사망했다. 반면 가짜약을 투여한 다른 코로나 입원 환자들은 19.3%가 증세가 악화됐다. 다만 사망자만 따지면 항체 치료제가 통계적으로 의미 있을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회사는 밝혔다.

항체는 외부 병원체와 싸우는 인체 방어 체계의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표면에 결합해 감염을 차단한다. 이 상태에서 다른 면역세포를 불러 병원체를 공격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최근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이가 이런 항체로 만든 치료제로 코로나 감염자의 입원율을 72%나 줄였다는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다른 형태로 감염에 맞서는 항체도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인체 면역 체계가 작동하는데 지나치면 오히려 정상 조직까지 공격해 병이 더 악화된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가 개발한 항체 치료제 토실리주맙(성분명, 약품명 악템라)은 이런 면역 과잉으로 인한 감염을 차단한다. 제넨텍은 2009년 로슈와 합병했다.

코로나 감염자 중에서 면역 단백질인 사이토카인 수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이와 같은 ‘사이토카인 폭풍’은 장기에 치명적인 염증을 유발한다. 토실리주맙은 염증을 차단해 사이토카인 폭풍을 막는다고 제넨텍은 밝혔다.

이번 발표에 대해 과학계는 놀라운 성과라고 반기면서도 논문으로 상세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최종 판단은 유보했다. 클리블랜드병원 중환자실의 아브히지트 두갈 박사는 미국 사이언스뉴스지 인터뷰에서 “44% 감소는 확실하게 매우 흥미로운 결과”라면서도 “임상시험 결과가 환자에 대한 상세 정보가 빠진 채 보도자료로 배포돼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토실리주맙 성분의 항체 치료제 악템라. 미국 제넨텍은 토실리주맙이 코로나 입원환자의 증세 악화를 44% 감소시켰다고 밝혔다./로슈

◇항체 투여 시기 따라 효과 달라

제넨텍의 이번 발표는 앞서 공개한 다른 임상시험 결과와도 차이가 난다. 회사는 지난 12일 의학 분야 논문 사전 출판 사이트인 메드아카이브에 코로나 중증 환자 452명에게 같은 토실리주맙을 투여했지만 증세가 완화되거나 사망을 막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제넨텍의 미국 의학 책임자인 제이미 프리드먼은 “앞서 임상시험과 달리 이번에는 인공호흡기 장치를 달 정도로 증세가 악화되기 전의 입원 환자들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즉 적기에 약을 투여해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제넨텍의 임상시험에 참여한 코로나 환자의 85%가 흑인과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그룹의 사람들은 백인보다 코로나에 더 잘 걸리고 사망률도 높게 나왔다. 과학자들은 평소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앓거나 바이러스에 노출되기 쉬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한편 앞서 인도에서는 토실리주맙을 코로나 치료제로 허가 받은 렘데시브리와 함께 쓰면 치료 효과가 높아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인도 브리한뭄바이시립공사(BMC) 보건부 연구결과, 8월 23일까지 혼수상태가 포함된 코로나 중증환자 642명에게 렘데시비르와 토실리주맙을 투여했더니 이 중 493명(77%)이 완치됐다. 이 병용 투여법으로 코로나19 중증환자의 완치까지 걸리는 시간을 2~3일 단축시킬 수 있다고 BMC는 밝혔다.

국내에서는 JW중외제약이 토실리주맙의 판권을 갖고 있다. JW중외제약은 토실리주맙 개발사인이 스위스 로슈그룹 산하 주가이제약으로부터 국내 독점 판권을 사들여 2013년부터 판매하고 있다. JW중외제약은 해외에서 토실리주맙의 코로나 치료제 가능성이 확인되면 국내 개발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