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연구진 모습. 유한양행이 지난 10년간 바이오 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2500억원에 달한다./유한양행

국내 제약사 휴온스그룹은 최근 미국의 바이오 기업 ‘클렌 나노메디슨’ 투자에 참여했다. 휴온스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총 4200만 달러(약 490억 원)가 모집됐다. 클렌 나노메딘슨은 자체 개발 기술을 활용해 파킨슨병 같은 신경계 질환 치료제와 코로나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다. 국소 마취제·보톡스 등이 주력제품인 휴온스가 바이오 기업 투자를 통해 항후 파트너사 참여까지 고려하고 있다. 투자금은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 시험에 쓰일 예정이다. 휴온스 측은 “바이오 기업들과 기술제휴, 공동개발 등을 통해 신약을 확보하고 이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혔다.

제약·바이오 회사들이 경계를 넘나드는 사례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전통 제약사들은 사업 다각화를 위해서 바이오 벤처에 투자하고 있다. 반대로 연구·개발(R&D)을 하던 바이오 기업들이 안정적인 수익과 생산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제약사를 인수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제약사, 바이오 회사 투자 통해 ‘선택과 집중’

국내 전통 제약사들이 새로운 사업을 확보하기 위해 바이오 벤처에 투자를 활발히 하고 있다. 바이오 기업이 보유한 후보물질과 기술을 공유해 보다 빠른 신약개발과 수익창출을 노리는 것이다. 유한양행은 지난 4월 바이오 기업 메디오젠에 230억원을 투자했다. 이 회사는 유산균 전문 기업으로, 프로바이오틱스를 원료로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을 개발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올 상반기에만 총 4개의 기업에 380억원의 지분 투자를 했다. 이는 작년 영업이익(125억원)의 3배 이상이다. 지난 10년간 바이오기업에 투자한 금액은 약 2500억원에 달한다. 보령제약은 지난 2분기에 총 4개 법인에 121억원을 투자했다. 해외 투자 펀드를 통해 글로벌 유망 바이오벤처를 찾아 투자하는 방식이다.

바이오 사업 발굴을 사업으로 채택하는 경우도 있다. 대웅제약과 휴온스는 올해 초부터 신규 바이오벤처를 발굴하고 창업 인큐베이팅 등 투자 활동을 신규 사업으로 추가했다. 보령제약의 경우 지난달 디지털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펀드 ‘보령 디헬스커버리’를 출범했다. 한 제약사 임원은 “옛날처럼 한 제약사가 모든 걸 다 하는 시대는 끝났다”라며 “기술력 있는 바이오 회사를 찾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동구바이오제약, 동화약품 등 제약사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AI 전문 바이오 기업 뷰노의 제품./뷰노

성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유한양행이 바이오 기업 제넥신의 기술을 접목해 개발한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는 지난해 베링거잉겔하임에 최대 1조원 규모로 기술수출됐다. 또 얀센에 1조40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은 2015년 바이오 벤처 ‘제노스코’로부터 사들인 신약 후보물질이다. 10여년 전부터 국내와 유럽 바이오벤처 15개사 이상에 투자해온 부광약품은 세 곳에서 투자금을 회수해 15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 동구바이오제약은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업체인 ‘디엔디파마텍’, 마이크로바이옴 업체인 ‘지놈앤컴퍼니’, 인공지능(AI) 의료기기업체인 ‘뷰노’에 투자했다. 이들 기업들은 연내 상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회사가 모두 상장할 경우 동구바이오제약은 수백억원대의 투자 수익을 얻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바이오 기업, 제약사 인수로 수익원과 제조시설 확보

반대로 바이오 기업들이 제약사를 인수하는 사례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통증·중추신경계 질환 전문 바이오 업체 비보존 계열사 루미마이크로는 지난 23일 이니스트바이오제약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이니스트바이오제약은 완제의약품을 제조·판매하는 중견 제약사로 지난해 매출 626억원이다. 비보존은 “인수가 완료되면 신약개발부터 완제의약품 생산∙판매까지 가능해진다”며 “역할을 분담해 시너지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항암제를 개발 중인 에이치엘비그룹도 최근 메디포럼제약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신약 생산기지와 국내 영업 마케팅 조직을 확보하게 됐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지난해에는 바이오제네틱스도 경남제약을 420억원에 인수했다.

이런 움직임은 안정적인 수익원 확보와 의약품 제조시설 확보를 위함이다. 바이오 기업들은 주로 투자를 받아 R&D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탓에 뚜렷한 수익원이 없다. 또한 자체적인 생산시설과 영업망도 없는 회사들이 많다. 기존 제약사를 인수함으로써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바이오 회사들은 의약품 생산·판매로 거둔 수익을 신약개발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도 만들 수 있고, 신약개발에 성공할 경우 의약품 공장에서 신약을 생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