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블랙홀의 이론을 정립하고 관측을 통해 그 존재를 입증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블랙홀은 강력한 중력으로 모든 물체를 빨아들여 빛조차 빠져 나오지 못하는 천체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6일(현지 시각) “202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로저 펜로즈(89)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라인하르트 겐첼(68) 독일 막스플랑크 외계물리연구소 교수, 앤드리아 게즈(55)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올해 수상자들의 발견은 블랙홀 연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블랙홀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하기는 지난 2017년 블랙홀 충돌로 나온 중력파를 검출한 과학자들이 수상한 이래 두 번째이다. 또 게즈 교수는 1903년 퀴리 박사 이래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네 번째 여성 과학자로도 기록됐다. 게즈 교수는 이날 “이번 수상이 젊은 여성들이 과학계로 오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로저 펜로즈 교수는 블랙홀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정립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블랙홀이 어떤 모습을 가지는지 명확히 기술했다.
아인슈타인 1916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지만, 자신은 블랙홀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나고 10년 뒤 1965년 펜로즈 교수는 블랙홀이 실제로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하고 이를 자세히 묘사했다. 그는 고(故) 스티븐 호킹 박사와 함께 ‘특이점(singularity)’ 이론을 정립했다.
특이점은 엄청난 중력을 가진 천체에서 물질과 복사에너지가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그의 업적은 아인슈타인 이후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공헌으로 간주되고 있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호킹 박사가 살아있었다면 두 사람이 공동 수상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라인하르트 겐첼 교수와 앤드리아 게즈 교수는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의 존재를 관측한 공로로 수상자로 선정됐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초부터 연구를 시작해, 지구에서 약 2만6000광년(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떨어진 우리 은하 중심에서 태양 질량의 400만배나 되는 초대형 블랙홀인 ‘궁수자리 A*’를 발견했다.
우리 은하 중심 방향에는 수많은 성간물질이 있어 가시광선으로는 관측이 어렵다. 두 교수는 가시광선 대신 적외선으로 공전하는 별들을 관찰해 중심의 블랙홀 질량을 측정했다. 겐첼 교수는 칠레에 있는 유럽남방천문대에서, 게즈 교수는 하와이의 케크천문대에서 각각 블랙홀을 관측했다.
상금은 1000만스웨덴크로나(약 13억원)로, 절반은 펜로즈 교수, 나머지는 두 수상자가 나눠 갖는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매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시상식이 열리지 않는다. 대신 수상자들이 자국에서 상을 받는 장면을 TV로 중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