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사는 식물 중 40%가 멸종 위기에 내몰린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50년 사이 동물의 3분의 2가 사라졌다는 보고서가 나왔는데, 동물을 먹이는 식물이 사라진 것도 그 원인이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인류를 먹여 살린 식물은 이제 신약과 바이오 연료의 보고로도 주목받고 있다.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 성분을 찾아낸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식물의 멸종 속도가 빨라지면서 인류는 자연이 준 보물 상자를 열어보지도 못하고 내버릴 상황에 부닥쳤다.
◇멸종 위기 식물 4년 새 두 배로 늘어
영국 큐 식물원은 지난달 30일 전 세계 42국 과학자 210명과 함께 지구상 식물과 버섯의 보존 상태를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구에는 식물이 약 35만종 있다. 이 중 32만5000종 정도가 꽃을 피운다. 보고서에 따르면 식물 종의 39.4%에 해당하는 14만여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2016년 보고서에서는 21%가 멸종 위기였는데 그 사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일례로 성 헬레나 올리브나무(Nesiota elliptica)는 1994년 야생에서 멸종했다. 식물원에서 키우던 마지막 개체도 2003년 죽었다. 빨간 꽃이 악기를 닮았다고 ‘천사의 트럼펫(Brugmansia sanguinea)’으로 불린 남미산 관목도 최근 멸종 판정을 받았다.
멸종 위기의 원인은 식물의 경우 농업이나 양식업으로 서식지가 사라진 게 가장 큰 이유였다(32.8%). 이어 생물 자원 활용(21.1%), 자연 환경 개조(10.8%), 주거⋅상업용 개발(10.5%) 순이었다. 버섯은 좀 달랐다. 식물처럼 넓은 곳에서 자라지 않아 농업·양식(12.9%)보다 주거⋅상업용 개발(18.7%), 생물 자원 활용(13.9%) 등이 더 큰 피해를 줬다.
이번 보고서는 작으나마 희소식도 전했다. 과학자들은 지난해 식물 1942종과 버섯 1886종을 새로 발견했다. 그만큼 지구의 식물 가족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신종 발견은 멸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신종 발견에 첨단 기술을 적용해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큐 식물원의 에이미어 닉 루간다 박사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미보고종이 많은 곳이 위협받으면 신속하게 분석하는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약의 보고인 약용식물들도 위기
식물과 버섯은 지구 생태계의 토대를 이룬다. 식물을 보호하는 일은 지구 생태계와 함께 인류도 살리는 길이다. 식물이 기후변화와 식량난, 신종 전염병이라는 인류의 3대 도전 과제를 해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약용식물이다. 인류는 주목에서 항암제 파클리탁셀을 찾아냈다. 최근에는 사과에서 당뇨 환자의 혈당을 조절할 성분을 찾았으며, 사포닌을 함유한 칠레의 상록수에서는 대상포진 백신의 효능을 강화하는 성분을 찾아냈다. 꿀풀과 식물인 세이지에서는 치매 환자의 인지 능력을 높이는 성분이 발견됐다.
하지만 평가 대상 약용식물 5411종 중 723종(13%)이 멸종 위기로 밝혀졌다. 기침감기에 써온 식물인 와르부르기아(Warburgia salutaris)가 대표적이다. 또 약용 버섯 6종 중 항생제 성분을 가진 말굽잔나비버섯(Fomitopsis officinalis)도 스페인에서 사라지는 등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식용식물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사라질 형편이다. 보고서는 식용 가능한 식물이 7039종인데, 이 중 417종(5.9%)만 농작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인류는 편식이 아주 심하다. 현재 식량 자원의 90%는 단 15종이 감당한다, 40억 명은 아예 쌀과 옥수수, 밀 단 3종에만 의존하고 있다.
2050년이 되면 인구가 78억에서 100억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런데도 소수 작물만 키우면 기후변화나 이로 인한 병충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큐 식물원 연구진은 가뭄에 강한 남아프리카산 콩이나 하와이에서 필리핀까지 연안 저지대에서 자라는 판단도 가뭄에 강해 새로운 식량 자원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바이오 연료도 마찬가지다. 2500여종이 원료가 될 수 있지만, 현재 옥수수와 사탕수수, 콩, 팜, 유채, 밀 6종이 전 세계 바이오 연료 원료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청정 연료인 바이오 디젤을 생산한다고 아마존 열대우림을 태우고 사탕수수를 키우는 일도 벌어졌다. 큐 식물원은 “케냐의 한 회사가 자연에서 매년 콩 3000t을 모아 발전용 디젤 연료를 만들고 남은 꼬투리는 사료나 비료로 쓴 사례처럼 바이오 연료도 원료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