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전지는 해가 떠 있을 때만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시간이 한정된 만큼 발전(發電) 효율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발전 효율은 태양전지 소재뿐 아니라 햇빛을 막는 미세 먼지 같은 환경 요인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다. 과학자들이 태양전지 효율을 높일 답을 자연에서 찾았다. 빛을 잘 흡수하는 독특한 나방의 눈 구조와 오염 물질을 튕겨내는 식물을 모방한 것이다.
◇나방 눈 모방해 빛 흡수율 높여
고두현 경희대 응용화학과 교수와 김선경 응용물리학과 교수 공동연구진은 “나방의 눈 구조를 모방해 태양전지의 효율을 46%까지 높일 수 있는 필름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 성과는 지난달 26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즈’에 실렸다.
밤에 활동하는 나방은 빛을 잘 흡수하는 독특한 눈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어두운 곳에서도 잘 봐야 하고, 밤에 빛이 반사되면 천적에게 잘 띄어 잡아먹히기 쉽기 때문이다. 나방 눈 표면에는 산처럼 생긴 100㎚(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 정도 크기의 작은 돌기가 빼곡히 모여 있다. 평면이면 빛을 그대로 바깥으로 반사하지만 돌기 구조면 빛이 반사돼도 결국 안쪽으로 향한다. 그만큼 빛을 더 많이 흡수한다.
연구진은 나방 눈 구조를 모방해 ‘반투명 태양전지’의 효율을 높일 필름을 개발했다. 반투명 태양전지는 기존 태양전지의 전극을 얇게 만든 형태다. 투과성이 좋고 양방향으로 빛이 유입되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빛의 손실도 컸다.
연구진은 10㎛(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 크기의 반구(半球) 표면에 수백㎚ 크기의 작은 삼각뿔들이 촘촘하게 세워진 구조를 만들었다. 이 구조는 빛의 반사를 줄여준다. 또 태양전지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반사되는 빛도 다시 전지 안쪽으로 되돌려 보낸다. 빛이 태양전지 안에 더 많이 머물도록 한 것이다. 실제 이 필름을 부착하자 반투명 태양전지의 효율이 실외광은 13.49%, 실내광은 46.19% 증가했다.
연구진은 태양광이나 실내 조명 등 빛의 종류에 상관 없이, 또 빛의 방향에 관계 없이 빛의 흡수율과 효율 모두 높아졌다고 밝혔다. 낮에는 태양광으로, 밤에는 실내 조명으로 종일 구동이 가능한 태양전지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두현 교수는 “태양전지뿐 아니라 디스플레이⋅센서 등 각종 소재의 효율 향상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식물 구조로 상처도 치료하는 유리
핀란드 오울루대 연구진은 지난 6월 국제 학술지 ‘태양 에너지’에 나비 날개를 모방해 태양전지의 효율을 높일 소재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나비와 나방 날개도 특수한 나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나비의 날개 가운데 검은색 부분은 이런 나노 구조가 빛을 모두 흡수했기 때문에 어둡게 보인다.
종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나비나 나방 날개는 대부분 요철 모양의 나노 구조로 이뤄져 있다. 연구진은 나비 날개를 모방한 구조물을 태양전지판에 부착했더니 빛 반사율이 35%에서 5%로 줄었다고 밝혔다. 태양전지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 전류도 66% 늘었다.
식물에서 영감을 받은 태양전지용 유리도 개발됐다. 한국기계연구원 나노융합장비연구부 임현의 부장 연구진은 “나노 유리 표면에 파라핀을 코팅해 오염 물질을 튕겨내고 빛 반사를 줄이는 태양전지용 유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성균관대학교 이진기 교수팀과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는 지난 7월 국제 학술지 ‘ACS 나노’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벌레잡이통풀의 미끄러운 표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벌레잡이통풀의 표면은 구멍이 많고 기름이 칠해져 있다. 벌레가 들어가면 미끄러워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런 특성을 구현하면 먼지나 오염 물질이 표면에 묻지 않고 미끄러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액체 윤활제인 기름은 빗물로 씻겨 나가면 그 기능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또한 유리에 코팅한다고 해도 겉에 붙은 오염 물질을 닦아내는 과정에서 사라질 수 있다.
연구진은 기름 대신 식물의 왁스처럼 고체 윤활제인 파라핀을 이용해 유리 표면을 코팅했다. 파라핀은 물과 반응하지 않는다. 연구진은 이 특성을 이용해 나방의 눈을 모사한 나노 구조에 파라핀을 코팅했다.
파라핀은 녹는점이 섭씨 46~68도로 낮아 태양열에 녹았다 굳기를 반복할 수 있다. 유리를 닦는 과정에서 파라핀이 훼손되더라도 태양에 5분 정도 노출되면 파라핀이 녹았다가 다시 굳으며 스스로 회복한다.
또 파라핀은 열전도율도 낮다. 이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유리 위에 얼음이 잘 생기지 않고, 얼음이 생기더라도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임현의 기계연 부장은 “이번 기술을 활용해 유리가 스스로 회복하는 기능을 기존보다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