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별에서 온 권투 선수인가, 기다란 머리를 한 외계인이 붉은색 글러브를 끼고 당장이라도 링에 올라갈 태세이다. 자세히 보면 붉은색 글러브는 더듬이이고 권투 선수의 철갑 가슴은 곤충의 겹눈임을 알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진작가인 모피드 아부 살와는 붉은 야자나무 바구미를 근접 촬영한 이 사진으로 올해 처음 시작한 ‘루미나 곤충 사진전(2020 Luminar Bug Photography Awards)’에 종합 1위를 차지했다.
◇멸종 위기 곤충에 대한 관심 높이려 제정
1등상의 주인공은 이름 그대로 야자나무에 기생한다. 바구미는 머리가 마치 코끼리 코처럼 길에 뻗은 모양을 갖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사진이 뛰어난 기술적 숙련도와 창의력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피드가 어린 시절 곤충을 싫어했다는 것이다. 그는 곤충에 대한 공포감을 극복하기 위해 곤충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싫어하던 곤충이 평생의 재능을 낳은 셈이다.
영국의 17세 소년인 제이미 스펜슬리는 뒤영벌 사진으로 청소년부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촬영 당시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어 초점을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40장의 사진에서 초점이 흐린 부분을 일일이 없애고 최종 사진을 만들었다고 했다.
루미나 곤충 사진전은 자선기금인 벅스라이프가 멸종위기에 처한 곤충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올해 처음 제정했다. 벅스라이프는 2002년 곤충과 거미 등 무척추동물 보존을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보호 대상은 육지 뿐 아니라 바다의 무척추 동물까지 포함한다.
이번 사진전을 진행한 영국의 사진작가 마이크 베츠는 “우리 행성은 환경과 생태계 위협에 처해 있으며 최근 수많은 무척추 동물이 급감하고 있다”며 “이 상으로 벅스라이프가 곤경에 처한 무척추 둥물들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벅스라이프의 매트 새들로 대표는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것만 아낄 수 있는데 슬프게도 곤충은 그런 대상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곤충이 없다면 우리가 아는 세상도 끝이 난다”며 “이번 상이 사람들이 여러 개의 다리를 가진 우리 친구들의 아름다움과 가치에 좀 더 다가서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륙 직전의 딱정벌레, 먹이 다투는 개미 순간 포착
종합 1위와 청소년부 1위 외에 다양한 부문 수상작도 발표됐다. 프랑스의 갈리스 호아루는 다이아몬드 오징어와 문어를 찍은 사진으로 수중 부문 1, 2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룽 차이 왕은 어미 거미와 수많은 새끼 거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찍어 거미 부문 1위로 선정됐다.
독일의 크리스티안 브로케스는 도토리 바구미가 막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려는 순간을 포착하고 ‘셋 둘 하나 이륙’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딱정벌레 부문 1위 작품으로 뽑혔다.
파리와 벌, 잠자리 부문 1위상은 하루살이 세 마리가 빗살새 풀잎에 붙어 있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선정됐다. 하루살이는 이름 그대로 수명이 짧아 찍기 어려운 곤충으로 꼽힌다.
이탈리아의 사라 자즈바르는 나비 부문 1위와 3위를 독식했다. 3위로 뽑힌 ‘적외선으로 본 상제나비’는 접사 사진과 적외선 사진을 합성한 작품이다. 영국의 데이비드 라인은 달팽이 사진으로 역시 이 부문 1, 3위를 차지했다.
필리핀의 레이난트 마르티네즈는 베짜기개미 두 마리가 불개미를 물고 서로 다투는 모습을 찍어 ‘당기기 전쟁’이란 제목을 붙였다. 이 사진은 개미와 메뚜기, 매미 등 기타 곤충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함지는 호리병벌의 머리를 찍은 사진으로 접사 부문 1위에 올랐다.
종이 다른 두 벌이 각각 자신의 집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다. 영국의 리 프로스트는 이 사진에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이란 제목을 붙였다. 곤충집 부문 1위로 뽑혔다. 이탈리아의 파비오 사르토리는 사마귀 두 마리가 꽃밭에 있는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어 휴대폰 사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총 상금 2만3000파운드(한화 약 3400만원)이 걸린 이번 사진전에는 전 세계에서 800여명의 작가가 5000점 이상을 출품했다. 벅스라이프의 대표와 유명 사진작가, TV 자연프로그램 진행자 등이 심사를 맡았다. 곤충 보호를 목적으로 시작된 대회인 만큼 모든 사진은 살아있는 피사체를 건드리지 않고 찍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