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이 마비된 장애인이 국내 연구진이 개발한 로봇을 다리에 장착하고 일어나 국제 재활로봇 올림픽인 ‘사이배슬론 2020’에서 당당히 세계 1위에 올랐다.
사이배슬론 2020 대회는 15일 “한국의 김병욱(47)씨가 KAIST 공경철 교수가 개발한 ‘워크온슈트4’ 로봇을 착용하고 임무 6가지를 최고기록 3분47초에 마쳐 참가 12팀 중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지난 2015년 미국 방위연구고등계획국(DARPA)의 로봇공학 챌린지 대회에서 KAIST의 인간형 로봇 휴보가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이번에는 인간과 로봇이 한 몸이 되는 웨어러블(wearable·입는) 로봇으로 다시 1위를 함에 따라, 로봇 기술에서 세계 최정상 수준에 올랐음을 입증했다. 공경철 교수는 이날 "아이언맨이 실제로 개발된다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완성될 것ˮ이라고 했다.
◇스위스, 미국 등 로봇 선진국 눌러
사이배슬론은 신체 일부가 불편한 장애인들이 로봇과 같은 생체 공학 보조 장치를 착용하고 겨루는 국제 대회다. 우리가 금메달, 동메달을 차지한 웨어러블 로봇 부문 외에, 팔다리 절단 환자가 쓰는 로봇 의수, 로봇 의족과 휠체어 로봇, 자전거 로봇, 뇌파로 하는 컴퓨터 게임 등 종목 6개가 있다. 웨어러블 로봇 부문은 기술 난이도가 이 중에서도 가장 높다.
2016년 1회 대회에 이어 올해 대회도 5월 스위스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세계 33개 지역에서 따로 진행했다. 주최 측은 각국에서 보낸 경기 영상으로 순위를 매겼다.
김병욱씨는 1998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완전히 마비돼 평소 휠체어로 움직인다. 하지만 지난 13일 대전 카이스트의 50m 길이 경기장에서 웨어러블 로봇을 장착하고 일어서, 지그재그 걷기, 계단 오르내리기, 앉았다 일어서서 책상 위 컵 정리하기, 경사로 올라가 문 닫기 등 임무 6가지를 깔끔하게 성공했다. 공 교수는 “보행 속도가 4년 전의 8배”라고 밝혔다.
김병욱씨에 이어 스위스 로잔연방공대팀이 1분 가까이 차이 나는 최고기록 4분40초로 2위를 차지했다. 3위인 동메달은 역시 공 교수팀 소속으로 출전해 5분51초를 기록한 이주현(20·이화여대)씨가 차지했다. 미국 팀은 6분51초로 4위였다. 중앙대 신동준 교수팀은 로봇자전거 부문 5위였다. 김씨는 “4년 전에는 한 가지 임무에서 시간을 초과해 아쉽게 3위를 차지했다”며 “대한민국 로봇이 이제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라고 말했다.
웨어러블 로봇은 허리부터 다리를 감싸 기계의 힘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도 일어서게 한다. 지팡이에 달린 조종기를 조작하면 로봇 다리가 걷거나 앉았다 일어선다.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해 생각대로 움직이는 로봇도 개발됐지만, 이번 대회에는 상용화에 근접한 단순하면서도 안정적인 로봇 기술을 적용했다.
공경철 교수는 “김병욱 선수는 오래전 사고를 겪은 남성이지만 이주현 선수는 작년 사고를 당한 여성”이라며 “조건이 다른 두 사람 모두 메달을 따 어떤 사람에게도 로봇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웨어러블 로봇 부문에는 8국 12명이 참가했다. 이 중 3명이 기술 문제 등으로 중도 포기하는 바람에 5국 9명이 우승을 겨뤘다. 수는 적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로봇 분야 세계 최고팀들이 참가했다. 4위에 오른 미국 플로리다대의 IHMC는 1회 대회에서 입는 로봇 상용화의 선두 주자인 이스라엘 리워크 로보틱스에 이어 2위에 올랐던 팀이다. IHMC는 2015년 로봇 챌린지 대회에서도 KAIST에 이어 2위에 올랐다.
◇ “한국, 웨어러블 로봇 도전할 만”
로봇은 1920년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에 처음 단어가 등장한 이래 이제는 일상생활에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세계 산업용 로봇이 270만대 이상 가동 중이며, 가정용 로봇도 한 해 1700만대 이상 팔린다.
특히 인간과 로봇이 한 몸이 되는 웨어러블 로봇 시장은 매년 41.2%씩 고속 성장 중이다. 세계 시장 규모가 2017년 5억2830만달러(약 5900억 원)에서 2025년 83억달러(9조2400억원)로 커질 전망이다. 로봇 업체 헥사 휴먼케어를 세운 한창수 한양대 교수는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은 미국에 상장된 업체가 리워크 로보틱스 등 손에 꼽을 정도”라며 “시장이 이제 열리는 상황이라 한국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공경철 교수는 세브란스병원의 재활전문의인 나동욱 교수와 의료용 입는 로봇 상용화를 위해 엔젤로보틱스를 설립했다. 공 교수는 “어린이가 걷는 데 필요한 힘의 90%까지 제공하는 입는 로봇도 개발했다”며 “로봇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건강보험 지원이 확대되면 우리나라가 시장을 이끌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