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기온이 뚝 떨어지면 장독이 얼어 터진다. 물이 얼면서 부피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고체는 액체보다 밀도가 높은데 왜 물은 다른 모습을 보일까. 과학자들은 밀도가 높은 물과 낮은 물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국내외 과학자들이 물이 극저온에서 밀도가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을 처음으로 포착했다.
포스텍 화학과의 김경환 교수와 스웨덴 스톡홀름대의 앤더스 닐슨 교수 공동 연구진은 지난 2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섭씨 영하 70도에서 얼지 않는 무거운 물을 만들어, X선으로 찰나의 순간에 밀도가 낮은 가벼운 물로 바뀌는 과정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당시 학부생이었던 포스텍의 유선주씨와 정상민씨도 참여했다.
◇고압에서 밀도 높은 무거운 물이 돼
물은 영상 4도에서 밀도가 가장 높다. 부피가 가장 작은 무거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보다 온도가 낮아지면 오히려 부피가 증가하면서 가벼운 상태가 된다. 추운 겨울에도 강물 속 물고기가 살 수 있는 것은 표면에는 0~4도 사이 가벼운 물이 언 얼음이 있지만 그 아래는 그보다 온도가 높은 무거운 물이 가라앉아 액체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2017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수소 두 개와 산소 하나로 이뤄진 물 분자가 여러 개 모여 집합체를 이루며, 4도 이하에서는 밀도가 낮은 물 분자 집합체가 늘어난다고 밝혔다. 그보다 훨씬 낮은 온도가 되면 물이 같은 비율로 무거운 물과 가벼운 물로 나뉘며, 두 물 사이에 상태 변화가 일어난다고 추정됐다.
물은 불순물이 들어가면 어는점 이하에서도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물에 소금을 넣으면 영하 4도까지 얼지 않는다. 하지만 영하 70도의 극적온에서 무거운 물을 만들 방법이 없어 밀도가 다른 두 물의 상태 변화를 입증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얼음을 녹여 순간적으로 극저온의 물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다. 먼저 대기압의 3000배 정도의 압력을 가하면서 영하 160도에서 밀도가 높은 얼음을 만들었다. 여기에 강력한 레이저를 쏘아 순간적으로 가열해 영하 70도의 무거운 물을 만들었다. 이 물은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한다.
물의 부피가 늘어나자 압력이 급속하게 떨어졌다. 물은 얼음이 되기 전까지 순간적으로 무거운 물에서 가벼운 물로 바뀌었다. 연구진은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펨토초(1000조분의 1초) 단위로 X선을 쏘아 압력이 내려가면서 무거운 물이 가벼운 물로 바뀌는 과정을 관측했다.
물이 밀도가 다른 상태로 같이 있다가 어느 한쪽으로 변하는 순간이 있다고 추정됐지만 이 가설을 실제 관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퍼시픽 노스웨스트 국립연구소의 그렉 키멜 박사는 사이언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실험은 물이 그토록 이상한 모습을 가지는 것은 실제로 두 가지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가설에 새로운 증거를 추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생명현상과 기후변화 이해에 큰 도움
물은 생명의 탄생과 유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물질이다. 물이 온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현상을 이해하면 생명현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비와 눈이 부르는 기후변화도 더욱 잘 예측할 수 있다.
김경환 포스텍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는 물의 비밀에 도전해온 세계 연구자들의 오랜 논쟁을 해소해 줄 중요한 연구결과”라며 “기초 과학에서 큰 의미를 가질 이 중요한 연구 성과에서 학부생들이 상당 부분 기여한 것 역시 주목할 부분”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