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시보 천문대가 수명을 다했다. 미국 국립연구재단(NSF)은 지난 1일 오전 7시55분(현지 시각) 푸에르토리코의 아레시보 천문대에서 900톤의 철제 구조물이 137m 아래에 있는 거대한 반사 접시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지난달 19일 NSF는 우주망원경의 케이블이 파괴되면서 붕괴 위험에 처하자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우주망원경은 해체까지도 살아남지 못했다.
미국 센트럴 플로리다대의 라몬 루고 플로리다 우주연구소장은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시설을 복원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정말 힘든 아침이다”고 말했다. 플로리다 우주연구소는 57년 된 전파망원경을 운영해왔다.
26년 동안 아레시보 천문대에서 일했고 지금도 근처에 살고 있는 조너던 프리드만 박사는 이날 AP통신에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나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직감했다”며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깊고 처절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900톤 철구조물, 305m 지름 반사경에 떨어져
루고 소장은 구조물이 붕괴할 때 접시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조물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구조물을 세 개의 지지탑 중 하나와 연결하는 케이블이 끊어지면서 붕괴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케이블은 앞서 손상에 이어 계속 엄청난 힘을 받고 있었다.
루고 소장은 지난달 26일 추수감사절 이래 남은 케이블을 이루는 철선들이 하루에 하나 꼴로 끊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연구재단에 붕괴 전 구조물은 철선이 한 두 개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루고 소장은 이날 기술자들이 해체 작업을 위해 지지탑 3개의 상태를 조사할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아레시보 천문대는 지난 8월과 11월, 주반사경을 지탱하던 철제 케이블이 잇따라 끊어지고, 305m 크기의 접시 안테나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처음엔 임시 케이블로 구조를 안정화시키고 보조 케이블을 교체할 계획이었지만, 11월 6일 같은 지지탑의 주케이블이 파손되면서 무산됐다.
NSF는 여러 엔지니어링 회사들의 다중 평가 결과 케이블이 설계된 하중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술자들은 당초 계획보다 구조물이 취약해졌다고 판단했고, NSF는 천문대의 나머지 부분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해체 결정을 내렸다.
◇영화 골든아이, 콘택트의 무대로도 유명
아레시보 천문대의 전파망원경은 지름 305m의 접시 모양 반사판 위에 137m 높이로 구조물이 달려 있는 형태였다. 1963년에 완공되었으며 2016년 중국에 지름 500m인 전파망원경(FAST)이 등장하기까지 세계 최대 망원경이었다.
아레시보 천문대는 지난 57년 간 전파 천문학자들에게 핵심적인 과학 장비였을 뿐 아니라, 제임스 본드 시리즈 ‘골든 아이’와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콘택트’ 같은 영화들에 등장해 대중적 인기도 얻었다.
아레시보 천문대의 전파망원경은 지구 대기의 상층부인 이온층을 연구하기 위해 건설됐다. 하지만 곧 모든 전파천문학 연구에 쓰이는 시설이 됐다. 전파천문학은 우주에서 오는 전파를 수신하는 연구 분야이다. 자기를 띤 별이 회전하는 펄사 등 여러 천체 현상은 전파를 발생한다.
아레시보 천문대는 그동안 관측을 통해 중성자별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제공했다. 또 MIT 과학자들의 이중 펄서 관측에도 기여해 1993년 노벨 물리학상을 안기기도 했다.
1992년에는 우리은하 밖에서 별 주위를 공전하는 외계행성을 처음 포착하기도 했다. 또한 우주 어느 곳에서 지적 생명체가 보낸 신호를 포착하고 지구에 접근하는 소행성을 추적하는 임무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