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이베라 습지는 석호(潟湖)와 밀림⋅초원 등 다양한 생태계가 모여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둘째로 큰 이 습지에 올 연말 100년 만에 재규어가 돌아온다. 과학자들은 이베라 습지에 최고 포식자가 돌아오면 동물은 물론 식물 생태계까지 원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재규어가 어떻게 식물까지 번성시킬 수 있을까.
◇북미 늑대 이어 남미 재규어 복원
이베라 습지는 20세기 초반 목장으로 개발되면서 파괴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가축을 보호하고 모피를 얻기 위해 재규어를 남획했다. 아르헨티나 재야생화 재단은 그동안 이베라 습지의 생태계 복원을 추진했다. 이곳이 국립공원으로 보호되면서 팜파스 사슴, 늪사슴과 대형 설치류인 카피바라, 케이맨 악어, 황색 아나콘다 등 다양한 동물이 늘어났다. 재단은 재규어 도입이 이베라 생태계 복원에서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일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먹이사슬 개념에 기반해 1차 생산자인 식물이나 먹잇감인 초식동물이 늘어나면 자연 생태계가 번성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식동물이 없으면 오히려 생태계 다양성이 줄어들었다. 초식동물이 지나치게 늘어나면서 식물을 마구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식물이 감소하면 그에 기대 사는 조류와 어류도 감소한다. 결국 애니메이션 라이언킹에서 사자가 떠난 땅처럼 최종 포식자가 없는 곳에선 동식물 모두 감소한다.
동물의 왕이 돌아오면 생태계는 다시 살아났다. 먹이사슬 연쇄 효과로 전체 생태계가 바뀌는 이른바 ‘영양 종속(trophic cascade)’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1990년대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70년 만에 최고 포식자인 회색늑대가 돌아오자 대형 사슴류인 엘크가 1994년 2만여 마리에서 2000년 8300여 마리로 감소했다. 엘크가 마구 뜯어먹던 개울가 버드나무는 다시 번성했다. 덕분에 개울이 제 모양을 찾고 물고기도 돌아왔다.
아르헨티나 재야생화 재단은 연말에 어른 재규어 세 마리와 새끼 두 마리를 방사할 계획이다. 과학자들은 재규어가 공포 효과를 불러와 생태계를 살릴 수 있다고 기대한다. 옐로스톤에서도 늑대가 직접 엘크를 잡아먹은 것보다 늑대에 대한 공포로 엘크의 개울 출입이 줄면서 식물이 번성했다. 마찬가지로 이베라 습지에서도 재규어가 오는지 보느라 설치류인 카피바라가 식물을 먹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 또 하위 포식자인 여우가 재규어를 피해 다니면 평소 먹잇감이던 멸종 위기 조류들도 혜택을 볼 수 있다.
◇아프리카에선 들개⋅표범 복원 시도
영양 종속 효과는 1960년대부터 밝혀지기 시작했다.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은 바닷가 바위에서 불가사리를 제거하자 조개류가 15종에서 8종으로 오히려 감소한 것을 발견했다. 포식자가 여러 종의 개체 수를 적절히 조절했는데 그 역할이 없어지자 특정 종만 득세한 것이다.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를 제거하면 실제로 생태계가 붕괴했다. 1970년대 애리조나대 연구진은 모피 사냥 때문에 알래스카의 암치트카섬에서 해달이 사라지자 성게가 과도하게 번식하면서 해조류가 급감한 것을 발견했다. 영양 종속이라는 단어도 이때 등장했다.
예일대 연구진은 무척추동물인 거미도 그들의 생태계에서 영양 종속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거미 역시 메뚜기를 직접 잡아먹지 않고도 공포 효과만으로 식물을 번성시켰다. 연구진이 거미의 입을 막아 공격을 못 하게 해도 메뚜기들이 근처 식물을 먹지 않았다.
늑대⋅재규어에 이어 아프리카에서는 들개와 표범 복원이 시도되고 있다. 모잠비크의 고롱고사 국립공원은 오랜 내전으로 표범과 들개, 사자 같은 포식자의 개체 수가 급감했다. 지난해 미국 프린스턴대의 로버트 프링글 교수 연구진은 고롱고사에서 포식자들이 없어지면서 숲에서 살던 임바발라 영양이 평원으로 진출하고 그곳의 식물 종들을 감소시켰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복원 가능성은 있다. 연구진이 표범 울음소리를 녹음해 들려주자 영양들이 다시 숲으로 돌아갔다. 연구진은 최근 공원에 들여온 들개들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하고 있다. 국립공원 측은 최근 표범 도입도 허가받았다. 풀들이 왕의 귀환을 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