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도 김장을 할 날이 멀지 않았다. 갓과 상추에 이어 무까지 우주에서 재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주 공간에서 이뤄지는 작물 재배 실험은 미래 달과 화성에 기지를 건설할 우주인이 식량을 자체 조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지난 3일 “지구 상공 400㎞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지난달 30일 우주인 케이트 루빈스가 무 20포기를 수확했다”고 밝혔다. 수확한 무는 우주정거장에서 냉동 보관했다가 내년 스페이스X의 무인 화물선 편에 지구로 보낼 예정이다.
‘식물 서식지-02(PH-02)’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번 연구 프로젝트는 NASA 최초의 무 재배 실험이다. 앞서 우주정거장에서 갓과 상추 등이 재배된 적이 있지만 잎이 아니라 뿌리를 먹는 구근(球根) 식물인 무를 재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뿌리 먹는 구근 작물 재배 첫 성공
NASA는 무가 27일 만에 수확이 가능하고, 식물 연구에 많이 쓰는 애기장대와 같은 배추과(科) 식물이어서 시험 재배했다고 밝혔다. 우주정거장의 우주인들도 무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NASA 케네디 우주센터의 우주 식물 재배 연구 책임자인 니콜 두푸르 연구원은 “무는 이전에 우주정거장에서 재배한 잎 많은 식물이나 밀과는 다른 종류의 작물”이라며 “다양한 종류의 작물을 미세 중력 환경에서 키우면 장기간 우주 탐사에서 우주인들에게 균형 잡힌 영양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주정거장의 무는 지구와 다른 방식으로 재배했다. 햇빛은 발광다이오드(LED)에서 나오는 빛으로 대체했다. 과거에는 구멍이 많은 점토에 미리 영양분을 넣고 천천히 방출시키며 식물을 키웠지만, 이번 재배 장치는 카메라와 180개의 센서로 식물을 상태를 확인하면서 지구에 있는 연구원들이 습도와 온도, 이산화탄소 농도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1995년부터 NASA와 식물 재배 실험을 진행한 루이지애나대의 칼 하센스타인 교수는 “무는 민감한 구근 생성 속성을 연구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며 “우주의 미세 중력 환경에서 식물의 대사작용이나 빛 반응이 지구와 다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NASA 연구원들은 우주정거장의 무와 비교하기 위해 지구에 같은 환경을 조성하고 지난달 17일부터 무를 재배했다. 이 무는 오는 15일 수확해 내년 지구로 오는 우주 재배 무와 비교할 예정이다.
◇달·화성 기지의 식량 자급에 도움
NASA는 달과 화성에서 우주인이 장기간 탐사를 하려면 식품을 자체 조달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우주 식물 재배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식물 재배 실험 책임자인 두푸르 연구원은 “이번 연구가 미래 우주 작물 생산을 위한 길을 닦았다는 점에서 영광”이라고 말했다.
우주인들은 이미 우주에서 키운 식물을 먹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적상추다. NASA 케네디 우주센터 연구진은 지난해 3월 국제 학술지 ‘첨단 식물과학’에 “2014~2016년 우주정거장에서 재배한 적상추의 영양 성분과 맛이 지구에서 키운 상추와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우주에서 재배한 식물은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영양분이 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정미 박사는 “우주에서 식물을 키우는 것은 비타민 섭취 등 우주비행사들의 영양 문제 해결뿐 아니라 격리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우주 비행사들의 정신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지구도 우주 식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박정미 박사는 “우주에서 개발된 기술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식물들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NASA가 우주 식물 재배에 이용한 LED 기술이나 수경 재배 기법은 빌딩에서 작물을 키우는 식물 공장에 많이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