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다른 곳과 달리 방사성물질이 유출돼 사람을 투입해 사고를 수습하기 어렵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현장에 들어간 작업자들이 방사선에 피폭되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위험한 일을 사람 대신 로봇이 대신하게 된다. 로봇이 사고가 발생한 원전 안팎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직접 사고 현장 내부로 들어가 수백㎏의 장애물을 치우는 등 사고 현장을 수습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7일 “자체 개발한 원자력 로봇들로 원자력 사고에 대응하는 자체 무인 방재 시스템을 갖췄다”고 밝혔다.

◇200kg 물건 들고 밸브도 돌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연구원은 2015년부터 방재용 로봇 개발과 로봇 방재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독일과 프랑스·일본·러시아 등 원자력 선진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해 무인 방재 시스템에 투입하는 로봇은 세 가지다. 먼저 ‘티램’은 원전 실내 모니터링을 위해 개발됐다. 높이가 30㎝인 소형 장갑차 형태다. 작은 몸집으로 원전 내 사고 현장 곳곳을 누비며 모니터링하는데 계단과 장애물도 오르내린다. 방사선·온도 탐지기를 탑재하고 있어 사고 현장의 방사선·열화상 정보와 3차원 지도를 실시간으로 작성해 외부로 보낸다.

실외 모니터링 로봇 ‘램’은 ATV(사륜오토바이)와 방사선 탐지 장비를 결합한 로봇이다. 원격조종을 통해 넓은 원자력 발전소 부지 안에서 시속 60㎞로 빠르게 달리며 모니터링한다. 램에는 드론도 실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상과 공중 다각도에서 현장 관측과 방사선 오염 지도 작성이 가능하다.

원전 사고 대응을 위한 핵심 로봇은 ‘암스트롱(ARMstrong)’이다. 사람처럼 두 팔을 가졌다. 한쪽 팔당 100㎏씩 총 200㎏을 들 수 있다. 강력한 힘으로 문을 부수거나 시멘트 더미와 폐기물이 담긴 드럼통도 치울 수 있다. 또 소화수를 분사하거나 파이프를 조립하고, 밸브를 돌리는 섬세한 작업도 가능하다. 빨대나 작은 볼트, 축구공처럼 탄력 있는 물체도 집을 수 있게 설계됐다. 특히 로봇 부품 중 약한 부분은 납으로 차폐해 방사선도 잘 견딘다. 암스트롱은 현재 시간당 500시버트(방사선 단위)를 견딜 수 있고, 1000시버트까지 견디는 것이 목표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당시 원전 내부는 650시버트 정도였다.

◇2016년부터 여섯 차례 훈련 수행

원자력연구원은 매년 2회 이상 다양한 시나리오의 방사능 방재 훈련을 하고 있다. 2016년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실제 훈련에 로봇을 투입하며 실효성을 검증하고 로봇을 보완해왔다. 지난 8월과 10월 훈련에서는 티램 로봇이 건물 내부로 진입해 현장 상황을 전송하고, 암스트롱이 우레탄 폼을 분사해 방사성물질이 누출되는 건물의 출입구를 밀봉하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연구진은 “방사성물질 밀봉 훈련은 해외에서도 시도해 본 적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 훈련에서는 로봇 전용 영상 통신 서버를 구축해 보안을 크게 강화했다. 무선통신으로 제어하고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로봇의 특성상 사이버 보안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경민 원자력연구원 로봇응용연구부장은 “앞으로 원전 내 높은 구조물까지 수습할 수 있는 대형 로봇이나 드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원의 무인 방재 시스템에 활용되는 로봇은 원전뿐만 아니라 다른 재난 사고 현장에서도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기관 모도르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22억7000만달러(약 2조4600억 원) 규모인 글로벌 재난 로봇 시장은 매년 8% 안팎으로 성장해 2025년 35억9000만달러(약 3조89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