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정복하는 인공지능(AI) 마도로스(선원)들을 길러주었으면 합니다.”

16일 오전 대전 카이스트(KAIST) 학술문화관에서 김재철(85)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기부 약정식이 열렸다. 김 명예회장은 AI 인재 양성을 부탁한다며 카이스트에 사재 500억원을 내놓았다. 앞으로 10년간 계획에 따라 나누어 기부하는 방식이다. 이는 역대 카이스트 개인 기부자 가운데 넷째로 많은 금액이다. 그는 “우리의 삶을 바꿀 큰 AI 물결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며 “오늘 이 자리는 대한민국이 AI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출정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6일 김재철 동원 명예회장이 사재 500억원을“AI 인재 양성에 써달라”며 카이스트에 기부했다. 역대 카이스트 개인 기부금 가운데 넷째로 큰 금액이다. /신현종 기자

김 명예회장은 빈손으로 큰 기업을 일궈낸 사업가다. 그는 “바다가 대한민국의 미래다”라는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말에 부산수산대(현 부경대)로 나침반을 맞췄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58년 실습항해사로 우리나라 최초의 원양어선을 탔다. 그로부터 3년 만에 국내 최연소 선장이 됐고, ‘캡틴 제이 시 킴(Captain J.C.Kim)’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가 항해한 거리만 지구 200바퀴. 1969년 자본금 1000만원과 직원 3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현재의 동원그룹으로 성장했다. 동원그룹은 1982년 국내 최초로 통조림에 담은 참치캔을 선보이며 참치캔의 대명사가 됐다. ‘참치왕’ 김재철 명예회장은 지난해 4월 50년간 이끌어 온 회사에서 물러난 뒤 현재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청년 시절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했다. 1950~1960년대 해외에서 설움을 받은 경험이 아직도 그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김 명예회장은 “우리나라가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자원도 없는 작은 나라에서 사람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고 말했다. 월급쟁이 때부터 고향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했고, 1979년 장학 재단인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해 장학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40년간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8000명이고 총 기부 금액은 420억원에 달한다.

요즘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AI다. 김 명예회장은 평소에도 “인공지능을 이해하지 못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말해왔다. 임직원들에게 AI 관련 서적을 권하고 본인도 해외 AI 서적을 구해 탐독했다. 미국·일본 등 AI 선진국들의 치열한 기술 개발 경쟁 속에서 한국도 AI 선진국이 되길 바라며 기부를 결심했다. 김 명예회장은 “과학 영재들과 우수한 교수진들이 집결해있는 카이스트가 기부하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했다”라며 “큰돈은 아니지만, AI를 일으키는 불씨가 된다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카이스트는 기부금 전액을 AI 분야 인재 양성과 연구에 사용할 계획이다. 학교는 AI 대학원의 명칭을 ‘김재철 AI 대학원’으로 정하고 현재 13명인 전임 교원 수를 2030년까지 총 40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또 우수 인재와 교수진 확보를 위해 현재 대전에 있는 AI 대학원을 내년 3월부터 단계적으로 서울 캠퍼스(홍릉)로 이전한다. 그는 “우리나라가 AI 혁명으로 다시 한번 크게 도약해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AI 시대를 주도한다면 세계사에 빛날 일이 될 것”이라며 “카이스트가 AI 인재 양성으로 AI 선진국의 길을 개척해 주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해 줄 것을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