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유행에 직면해 과학자들은 백신 개발 속도전을 벌였다. 중국 연구진이 1월 10일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공개한지 1년도 안돼 지난 2일 영국 정부가 화이자의 코로나 백신을 허가했다./사이언스

올해 과학계를 뒤흔든 최고의 연구 성과는 코로나 백신 개발이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17일 “올해의 과학 연구성과(2020 breakthrough of the year)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해 신속하게 개발된 백신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사상 유례 없는 백신 개발 속도전 보여

사이언스지는 해마다 연말에 10대 과학 뉴스를 선정, 발표한다. 이날 사이언스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 전체로 퍼지면서 모두에게 2020년은 생명이 위태로운 한 해였다”며 “그럼에도 코로나 연구 최전선에 있는 과학자들이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백신 개발 경쟁을 벌였다”고 밝혔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중국 연구진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해독해 지난 1월 10일 인터넷에 공개하자마자 바로 백신을 개발을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2일 영국 정부가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텍이 개발한 코로나 백신을 처음으로 허가했다. 접종은 8일부터 시작됐다.

미국도 지난 14일 화이자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다. 18일에는 모더나의 코로나 백신도 미국 접종이 허가될 예정이다. 러시아도 최근 자체 개발한 코로나 백신의 최종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사이언지의 뉴스를 보도하는 존 코헨 기자는 “그토록 많은 경쟁자들이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협력한 적이 없었고, 그토록 많은 백신 후보들이 대규모로 효능 임상시험을 동시에 진행한 적이 없었다”먀 “정부와 산업계, 학계, 비영리 기구들이 같은 감염병에 대항해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돈과 힘과 뇌를 던진 적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석회암 동굴에서 발견된 4만3900년 전 벽화의 일부. 사진 오른쪽에 뿔이 달린 들소가 보이고 왼쪽에 작은 사람 6명이 창이나 밧줄을 들고 마주하고 있다. 왼쪽 그림은 사람 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호주 그리피스대

◇인류 最古의 사냥도 발견 성과

코로나 백신 외에 고고학과 생명과학, 천문학 등에서 다양한 올해의 연구 성과들이 선정됐다. 지난해 12월 호주 그리피스대 연구진은 인도네시아의 석회암 동굴에서 4만4000년 전 인류의 조상이 남긴 사냥 그림을 발견됐다. 이는 인류 최고(最古)의 사냥도로 인정 받았다. 이전에도 비슷한 시기에 동물을 그린 동굴 벽화가 발견된 적은 있지만 사람과 동물이 모두 등장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로는 가장 오래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에서는 5월 흑인 청년이 경찰에 체포되던 도중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과학계에도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흑인 과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7월 세계기후연구프로그램(WCRP)에 참여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계속 사용하면 오는 206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산업화 이전보다 2배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로 인해 지구 기온이 1.5~4.5도 상승한다는 것이다.

숙주 세포의 유전자에 삽입된 에이즈 바이러스의 유전자(파란색)./사이언스

◇100년만의 상온 초전도 현상 구현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지난 8월 네이처에 불치병으로 불린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를 약을 쓰지 않고 자력으로 치유한 이른바 ‘엘리트 콘트롤러’ 64명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도 유전자에 에이즈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삽입됐지만, 대부분 복제가 안되는 비활성 지역이었다.

9월 독일 과학자들은 사이언스지에 새의 뇌에 포유류 피질에서 발견되는 것과 비슷한 신경망이 존재하며, 그 덕분에 인지 기능이 발달했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4개월밖에 안 된 큰까마귀가 침팬지나 오랑우탄과 같은 영장류 성체와 비슷한 인지 능력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진은 10월 네이처에 영상 15도에서 전기를 보낼 때 저항이 사라지는 ‘상온 초전도(超傳導)’ 현상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1911년 초전도 현상이 발견된 이래 100년 만에 극저온이 아닌 상온에서 처음으로 구현돼 바다 건너 멀리 전기를 아무런 손실 없이 보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다이아몬드 사이에 황과 수소, 탄소로 이뤄진 물질을 두고 초고압을 갈어주면 영상 15도에서 초전도 상태가 된다. /미 로체스터대

◇AI 50년 만에 단백질 분석서 인간 필적

영국 딥마인드는 11월 인공지능(AI)으로 50년 만에 처음으로 인간의 실험 결과와 대등한 수준으로 단백질의 3차원 입체 구조를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과학 연구의 게임 판도가 바뀌었다”고 했다. 같은 달 캐나다와 미국, 중국 과학자들은 네이처에 ‘외계인이 보낸 신호’라고 불린 미스터리의 강력한 우주 전파 신호가 우리은하 내부에서 자연 발생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딥마인드의 인공지능이 밝힌 단백질 구조 모형. 선들은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들이 연결된 형태이다./딥마인드

치명적인 유전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미국 크리스퍼 테라퓨틱스와 영국 버텍스 파마슈티컬는 12월 미국혈액학회에서 유전성 빈혈 환자 3명에게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시술을 해 확실한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낫 모양으로 변한 적혈구. 이로 인해 심각한 빈혈이 일어난다. 과학자들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변이 유전자를 교정해 이 빈혈을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사이언스

올해 과학계의 어두운 모습도 지적됐다. 사이언스지는 정치에 경도된 공무원과 의사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퍼뜨려 과학자와 정책 결정자 사이에 균열이 발생한 것은 올해 과학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사이언스의 카이 쿠퍼슈미트 기자는 “올해는, 단지 자연에 잠복한 미지의 병원체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진 게 아니라 과학과 사회의 연대를 되살리고 강화하는 노력이 있었다고 결론이 나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