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단기간에 백신 접종 인구를 늘리기 위해 백신 접종 간격을 두 달 이상 뒤로 미루는 특단의 조치를 시행했다. 코로나 백신은 보통 두 번 접종으로 예방 효과를 내는데, 2차 접종 시기를 뒤로 미루고 최대한 1차 접종자 수를 늘려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겠다는 의미다.
영국 보건부는 지난 30일(현지 시각)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의 권고를 받아들여 자국 제약업체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가 개발한 코로나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코로나 백신이 사용 승인은 세계에서 영국이 처음이다. 영국이 코로나 백신을 승인한 것은 지난 2일 미국 화이자-독일 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 백신을 세계에서 처음 승인한 이래 두 번째이다.
◇3달 간격으로 백신 접종 추진
맷 행콕 보건부 장관은 이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생산이 가능해지면 최대한 빨리 보급할 것”이라면서 “이 백신은 1회차 접종과 2회차 접종 사이 기간이 최대 12주라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은 1, 2차 접종 간격이 한 달이다. 2차 접종 시기가 한 달이 아니라 세 달 뒤로 미뤄지면 백신 공급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2차 접종분을 비축하지 않고 일단 많은 사람에게 1차 접종을 하고, 나중에 생산량이 증가하면 2차 접종분을 확보하면 되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1주에 200만 명에게 접종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축구장과 경마장에 임시 백신 접종 시설을 만들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돌기)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무해한 침팬지 감기 바이러스에 집어넣은 형태다. 회사는 지난달 백신을 한 달 간격으로, 첫 회에는 1차 접종량의 절반을 투여하고, 2차 접종에는 1차 접종량을 모두 투여할 경우 가짜약을 접종한 사람보다 코로나 감염이 90% 감소했다고 밝혔다.
반면 두 번 모두 같은 분량을 접종할 경우에는 면역 효과가 62%로 떨어졌다. 고용량이 저용량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나중에 저용량 백신 투여가 임상시험 도중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백신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영국 정부는 이번에 백신을 기존 임상시험처럼 한 달이 아니라 세 달 간격으로 접종한 사람은 효과가 80%까지 올랐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는 70%정도로 알려졌다. 이 결과는 아직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백신 개발을 이끈 옥스퍼드대의 앤드루 폴라드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 “백신 접종 간격이 길수록 항체가 더 많이 생겼다”며 “처음에 저용량 투여가 효과가 높게 나온 것도 사실은 접종 간격이 길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가 백신 접종 숫자를 늘리려는 것은 최근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지면서 국토의 3분의 2가 봉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매일 수백 명이 코로나로 사망하는 상황을 통제하려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효과가 화이자나 모더나의 95%에 크게 못 미쳐도 일단 백신 접종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영국 정부의 생각이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미국 하버드대의 마이클 미나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 해 수십 억 명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일을 얘기하는 것”이라며 “(접종 간격이 늘어나면) 아마도 손해 보는 일도 있겠지만 인구 전체로 보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화이자 백신의 2차 접종 시간도 뒤로 미룰 계획이다. 하지만 화이자는 이날 “1차 접종의 효능은 3주 뒤 2차 접종까지 한 경우보다 높지 않다”며 “질병에 대한 최대 방어 효과를 내려면 두 번 접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생산 쉽고 저렴해 개도국에 적합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효과는 다소 떨어지지만 다른 면에서 장점이 많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독성이 없는 바이러스를 유전자 전달체로 사용해 냉장 보관이 가능하다. 반면 화이자는 열에 약한 지방 입자로 RNA를 감싼 형태여서 영하 70도로 냉동 보관해야 한다. 모더나 백신도 영하 20도로 보관한다.
또 바이러스 전달체 방식은 예전부터 백신에 널리 사용한 방법이라 생산도 쉬워 저개발국가에 안성맞춤이다. 가격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3~4달러로 모더나의 25달러보다 훨씬 저렴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이 30억 접종회분 이상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구매했다.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000만회분 구매 계약을 맺었으며 내년 2월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안동 백신공장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위탁생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