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 표면에는 홀로그램처럼 위·변조를 방지하기 위한 기술이 적용돼 있다. 그런데도 위조 범죄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폐뿐 아니라 명품 가방과 신발, 신분증 등 위조 대상도 광범위하다. 과학자들이 위조범이 따라 할 수 없는 차세대 위·변조 방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복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미세 구조를 만들어 조건마다 색이 달라지는 암호를 입력하는 방식이다.

/그래픽=양진경

◇나노 구조로 색 구현, 복제 어려워

전통적으로 위·변조 기술은 프리즘처럼 각도에 따라 색이 바뀌는 방식이나 착시 현상, 홀로그램 방식을 많이 이용했다. 이 같은 기술은 비교적 모방하기 쉽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최근 첨단 과학 기술이 접목되면서 위·변조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포스텍(포항공대)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노준석 교수 연구진은 “나노 구조체를 이용해 위조를 방지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소자를 만들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나노포토닉스’에 지난해 11월 게재됐다.

연구진은 머리카락보다 1000분의 1이나 가는 미세 구조를 제작했다. 이 미세 구조의 배열을 조합하면 다양한 색상을 낼 수 있다. 암호화할 수 있는 QR 코드도 만들 수 있다.

노 교수는 “구조가 작다 보니 이미지를 구성하는 원래 모양을 알아내기가 어려워 복제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며 “기존에는 일주일 만에 복제가 가능했다면 이 기술은 2~3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수천 배의 배율을 갖는 전자현미경을 이용하지 않으면 구조를 파악할 수 없고, 구조를 알아도 나노미터 단위로 물질을 가공할 생산 설비가 있어야 해 실질적으로 위조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빛의 편광(偏光) 원리를 이용해 다양한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도 성공했다. 편광은 전기장이 특정 방향으로만 진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이용하면 평소에는 아무 무늬가 없는데 특수 필터를 사용하면 제조 번호가 보이게 할 수 있다. 노 교수는 “입사광의 편광에 따라서 이미지를 끄고 켤 수도 있어 여러 이미지를 동시에 저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상석 박사 연구진도 이런 편광 원리를 이용했다. 연구진은 디스플레이 장치에 흔히 사용되는 액정 소재에 특정 첨가물을 혼합해 액정 분자들을 나선형 구조로 만들었다. 이 구조에 의해서 빛이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특정 파장대의 빛을 선택적으로 반사한다.

이 박사는 “조건에 따라 색을 나타내거나 사라지게 할 수 있어 빛을 활용한 위·변조 방지 기술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 성과는 지난해 7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에 소개됐다.

특히 연구진은 러시아 인형인 마트료시카처럼 액정 입자의 구조를 1~5층까지 여러 층으로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여러 층을 통해 다양한 반사 색을 갖는 액정 입자는 정교한 위·변조 방지 소재로 응용될 수 있다. 이 박사는 “지폐나 신분증 등의 색 변환 잉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러 위·변조 방지 기술 동시 적용도

아예 여러 위·변조 방지 기술을 한 번에 담아 복제를 불가능하게 하는 기술도 개발됐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이지석 교수 연구진은 “미세 입자에 3차원 홀로그램과 특정한 색 등 여러 보안 정보를 다양한 형태와 조합으로 구현함으로써 위조가 불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지난 5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3가지 기술을 동원했다. 먼저 고분자 입자는 보는 방향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특성이 있다. 또 이 입자를 물에 담그면 색이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빛을 비추면 3차원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결국 빛의 양에 따라 고분자 굴절률 등이 삼차원적으로 달라져 특정 색과 홀로그램 문양이 나타나는 원리다.

연구진은 이 방법으로 머리카락 굵기의 입자 안에 고해상도 명화를 그려 넣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확대경으로 보면 명화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이 미세 입자는 가로와 세로 4개씩 총 16개의 격자가 있으며 격자당 4개의 색상을 구현할 수 있다. 격자당 발현되는 색상 조합을 다르게 할 경우 미세 입자 1개당 40억 개 이상의 암호 코드를 만들 수 있다. 이 교수는 “이 기술을 활용하면 보안 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원천 기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