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 새로운 로봇이 도착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19일 5시 55분(한국시각) 로버(이동형 탐사 로봇) ‘퍼서비어런스’호가 화성에 착륙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발사된 화성 탐사선 트리오 중 아랍에미리트(UAE)와 중국에 이어 미국까지 화성 도착에 성공한 것이다. 영어로 인내라는 뜻의 퍼서비어런스는 지난해 7월 30일 지구를 떠나 6개월 반 동안 총 4억7000만㎞를 비행했다.
퍼서비어런스호의 착륙이 확인되자 미국 캘리포니아주 제트추진연구소의 통제실은 환호성에 휩싸였다. 과거 우주 임무가 성공하면 통제요원들이 서로 껴안고 손바닥을 부딪치며 축하를 했지만, 이번에는 코로나 여파로 마스크를 쓴 채 투명창 건너로 주먹만 내밀어 인사를 나눴다.
그럼에도 마스크 밖으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은 그칠 줄 몰랐다. 특히 퍼서비이런스호가 착륙 직후 찍은 화성 사진 두 장을 보내오자 통제실 안은 박수와 탄성으로 가득 찼다. 퍼서비어런스호는 아직 먼지가 덮인 반투명 렌즈 마개를 열지 않은 상태에서 저해상도로 착륙지 주변을 찍어 보냈다. 그래도 예상했던 대로 로버 주위가 평평한 지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티브 주크지크 NASA 국장 직무대행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까지 겹친 모든 어려움 속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마이크 웟킨스 제트추진연구소장도 “이번 착륙 성공은 장차 화성의 인간 거주를 위한 길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공중에 뜬 착륙선에서 크레인으로 내려
화성은 대기가 희박해 착륙 때 공기 저항을 거의 받지 않는다. 착륙선이 제때 감속을 하지 않으면 충돌 위험이 크다. 화성 대기 진입에서 착륙에 이르는 시간이 ‘공포의 7분’으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까지 화성 착륙을 시도해 성공한 비율이 절반에 불과하다.
퍼서비어런스는 이날 착륙선에 실려 5시 48분 약 140㎞ 상공에서 화성 대기에 진입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낙하산을 펼쳐 감속을 한 데 이어 착륙선이 역추진 로켓을 작동해 공중에 뜬 상태에서 크레인으로 초속 0.75m의 저속으로 로버를 지상으로 내렸다. 퍼서비어런스는 5분 뒤 처음으로 화성 표면 사진을 전송했다.
무게 1톤의 퍼서비어런스는 바퀴 6개로 움직인다. 1997년 미국 최초로 화성에 도착한 로버였던 소저너와 스피릿·오퍼튜니티(2004년), 큐리오시티(2011년)의 뒤를 이어 5번째 로버이다. 무게가 1톤이 넘는 것은 큐리오시티를 이어 두 번째다. 미국은 현재 화성에서 큐리오시티와 고정형 탐사선인 인사이트를 운용하고 있다.
인사이트는 이번에 퍼서비어런스에서 3000㎞ 이상 떨어진 곳에서 지진계로 착륙 과정에서 발생한 진동을 측정했다. NASA는 퍼서비어런스가 내장 카메라와 마이크로 기록한 착륙 과정을 오는 22일쯤 공개할 계획이다.
퍼서비어런스 착륙 성공으로 현재 화성에서 활동하는 탐사선은 이달에 화성에 도착한 2대를 포함해 궤도선 8대(미국 3, 유럽 2, 인도 1, UAE 1, 중국 1)와 착륙선 1대(미국), 로버 2대(미국)이다.
◇화성 토양 가져와 생명 흔적 추적
미국은 이번에 처음으로 화성의 토양 시료를 지구로 가져오겠다고 밝혔다. 퍼서비어런스가 화성 토양 시료를 채취해 원통에 넣어두면 나중에 미국과 유럽이 개발한 탐사선이 따로 화성에 가서 회수한 다음 2031년 지구로 가져올 계획이다. 과학자들은 퍼서비어런스호가 보내온 화성 시료에서 생명체의 흔적을 기대하고 있다.
로버가 착륙한 지름 45㎞의 예제로 충돌구는 수십억 년 전 거대한 호수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예제로는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한 마을 이름으로, 슬라브어로 호수를 뜻한다. 과학자들은 과거 물이 있었다면 이곳의 암석이나 토양에 생명체의 흔적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퍼서비어런스호는 앞으로 2년 간 암석을 채취해 생명체의 흔적을 찾을 예정이다. 주요 탐사 지역은 예제로 충돌구의 위성 사진에서 삼각주로 보이는 곳이다. 삼각주는 강물이 만든 퇴적지를 말한다. 지구에서는 이런 곳에 유기물이 풍부해 생명체가 살기 좋다.
특히 로버는 삼각주 가장자리의 퇴적층에서 지구에 있는 스트로마톨라이트와 같은 형태를 찾고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미생물과 퇴적물 알갱이들이 결합해 이뤄진 구조물이다. 이번 탐사팀의 일원인 미국 퍼듀대의 브리오니 호건 교수는 영국 BBC방송에 “만약 예제로에서 스트로마톨라이트와 같은 구조물이 발견되면 화성 우주생물학의 성배(聖杯)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NASA는 퍼서비어런스에 무게 1.8㎏에 날개 길이가 1.2m인 헬리콥터 ‘인저뉴어티'호도 실어 보냈다. 영어로 독창성이란 뜻이다. 헬리콥터가 비행에 성공하면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로 비행에 성공한 이래 처음으로 지구가 아닌 곳에서 인류가 만든 비행체가 하늘을 처음으로 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중국, 궤도선·착륙선·로버 동시 첫 운용
이번 달에 화성 탐사에 나선 나라는 미국과 UAE와 중국 세 나라이다. 화성 탐사 트리오인 셈이다. 지난해 7월 20일 UAE의 아말(아랍어로 희망) 탐사선에 이어 23일과 30일 중국의 톈원(天問) 1호와 미국의 퍼서비어런스가 잇따라 발사됐다. 당시가 지구와 화성이 가장 가까워졌을 때였다. UAE의 아말 탐사선은 지난 10일 0시 57분 화성 궤도에 진입했으며, 톈원 1호가 같은 날 오후 9시 7분 화성 궤도에 들어섰다.
UAE와 중국도 역시 이번 화성 탐사로 각각 최초의 기록을 세울 수 있다. UAE는 이번에 미국·러시아·유럽·인도에 이어 5번째 화성 궤도 진입국이 됐다. 선진국들의 독무대였던 우주 개발 경쟁에 과학의 변방이던 중동의 소국이 데뷔한 것이다. 아말 탐사선은 앞으로 화성 상공 2만~4만3000㎞ 상공을 돌며 카메라·적외선 분광기·자외선 분광기 등으로 대기 변화를 관측한다. 1년이 687일에 이르는 화성의 연중 기후도를 최초로 작성하는 것이 목표이다.
중국도 이번에 처음 화성 진입에 성공했다. 특히 화성에서 궤도선과 고정형 착륙선, 탐사로봇을 동시에 운용하는 첫 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10일 궤도선이 화성 궤도에 진입한 데 이어 오는 5월 착륙선과 로버를 화성 지면에 착륙시킬 계획이다. 텐원 1호 로버는 퍼시비어런스와 같이 화성 탐사 로버 최초로 지하 100m까지 탐사할 수 있는 레이더 장비를 장착했다. 중국은 이번 탐사에서 물과 얼음을 찾고 토양과 암석 성분을 분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