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제조사들이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차단한 새로운 백신 개발에 들어간 가운데, 미국 정부가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임상시험 규정을 대폭 완화했다. 임상시험 참가자 수나 효능 비교 시험을 크게 줄여 수개월 안에 변이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을 백신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2일 전염성이 강한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작위 비교 시험을 생략하는 새로운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미 FDA의 코로나 백신 임상시험 가이드라인 개정안]
◇무작위 비교 시험을 혈액 실험으로 대체
일반적으로 백신 임상시험은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한쪽은 백신, 다른 쪽은 가짜약을 접종하고 오랜 시간 동안 질병 예방 효과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FDA는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개량형 코로나 백신은 수개월씩 걸리는 가짜약 투여군과의 비교 임상시험을 생략해도 된다고 밝혔다.
대신 개량 백신을 투여받은 사람에게서 혈액을 채취해 실험실에서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반응을 시험하면 된다. 만약 개량 백신이 혈액 실험에서 원래 백신과 비슷한 면역반응을 유도하면 사용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미국 화이자와 모더나는 이미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항할 새 백신 개발에 들어갔다. 업체들은 백신 개량이 6주면 가능하다고 밝혔다. 백신에 들어가는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인 mRNA만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상시험은 이전과 같이 진행할 수밖에 없어 개발 속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완화된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된다.
◇임상시험 대상도 수만명에서 수백명으로
임상시험에서 가짜약 투여군과의 비교 과정이 생략되면서 임상시험 참가자 수도 크게 줄어든다. 이날 브리핑에서 FDA의 백신 규제 책임자인 피터 마크 박사는 “개량 백신 임상시험은 수백명을 대상으로 수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코로나 백신은 수만 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됐다.
또 임상시험 참가자의 연령 기준도 크게 완화된다. 기존 코로나 백신은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시험했지만,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임상시험은 단일 연령대를 대상으로 가능하며, 그 결과가 전체 연령에도 적용된다. FDA는 개량형 코로나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동물실험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FDA가 코로나 백신 임상시험 기준을 크게 완화한 것은 변이 바이러스가 기존 백신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코로나 백신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전자나 그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을 인체에 주입해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원리이다. 한 번 약하게 바이러스를 경험한 인체는 나중에 실제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바로 막아낼 수 있다. 코로나에 면역이 생기는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 백신이 최근 전 세계로 빠르게 퍼지는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미국 화이자의 백신은 영국과 남아공발 변이 바이러스도 막아내기는 했지만, 이전보다 항체가 2~10배 더 필요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은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에는 예방 효과가 10% 수준에 그쳤다. 남아공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