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입자가 들어있어 장미빛을 내는 크랜베리 유리잔./위키미디어

신호등 앞에만 서면 진땀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선천적으로 색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색각이상(色覺異常) 때문이다. 이제 콘택트 렌즈로 간편하게 색각이상을 교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금까지 나온 색각이상 교정용 안경이나 콘택트 렌즈보다 간편하면서도 안전성이 높아 상용화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화학회(ACS)는 지난 3일(현지 시각) “아랍에미리트(UAE) 칼리파대의 하이더 버트 교수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의 알리 예티슨 교수 공동 연구진이 금 나노입자를 이용해 색각이상을 교정하는 콘택트 렌즈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화학회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ACS 나노’에 실렸다.

◇금 나노입자로 구분 안되는 색 걸러

색각이상은 사람 눈의 망막에서 색을 감지하는 원추세포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다. 약 700만개의 원추세포는 빛의 삼원색인 적색과 녹색, 청색을 구분하는데. 이 기능이 약하면 색약, 세포가 아예 없으면 색맹으로 구분한다. 우리나라는 남성이 전체의 약 6%, 여성은 약 0.4%가 색각이상자로 추정된다. 색각이상은 동양인보다 서양인이 많다.

지름이 약 10밀리미터인 콘택트 렌즈는 금 나노입자를 함유하고 있어 붉은 빛이 돈다. 적록색맹을 가진 사람들이 구분하기 힘든 파장의 빛을 걸러 색각이상을 교정한다./ACS

연구진은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단위의 금 입자를 묵처럼 말랑말랑한 고분자 물질인 하이드로겔에 섞어 콘택트 렌즈를 만들었다. 금 입자는 인체에 해가 없어 수세기 동안 유리 제조에 쓰였다. 금 입자가 유리에 들어가면 붉은 색의 빛을 반사해 장밋빛을 내는 크랜베리 유리잔이 된다.

금 나노입자가 들어간 하이드로겔은 520~580나노미터 파장의 빛을 걸러낸다. 이 파장은 녹색에서 적색으로 이어지는 부분으로 적색맹과 녹색맹을 가진 사람이 잘 구분하지 못한다. 연구진은 지름이 40나노미터인 금 입자가 서로 뭉쳐지지도 않고 필요 이상의 다른 빛까지 차단하지 않아 색각이상 교정에 가장 효과적임을 확인했다.

색각이상자의 눈에 비치는 색들. 왼쪽부터 정상, 적색맹, 녹색맹, 청색맹인 사람의 눈에 비친 색색의 과일 모습이다./ACS

◇임상시험 거쳐 상용화 추진

현재 적록색맹인 사람은 붉은 빛이 도는 안경을 사용해 색 구분 능력을 높인다. 하지만 색각이상 교정용 안경은 크기가 커 불편하고, 다른 시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이런 문제로 최근에는 콘택트 렌즈에 염료를 넣는 방법이 개발됐지만, 이 역시 염료가 새는 경우가 있어 안정성과 내구성이 떨어졌다.

금 나노입자 렌즈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금 나노입자가 들어간 콘택트 렌즈는 시판 중인 콘택트 렌즈와 같은 정도로 수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세포 배양 실험에서 독성을 보이지 않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색각이상 교정 능력은 안경보다 뛰어나고 염료가 든 콘택트 렌즈와 비슷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임상시험을 거쳐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