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파란색). T세포에 암세포를 찾아내는 유전자를 주입한 이른바 CAR-T세포 치료제가 난치성 혈액암인 골수종 치료제로 첫 승인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슬로언케터링암센터

혈액암이 몇 번씩 재발한 환자가 새로운 면역세포 치료제를 투여받으면 1년 동안 병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부작용도 없어 이르면 이달 중으로 미국에서 승인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사우스웨스턴 텍사스대병원의 래리 앤더슨 교수 연구진은 지난 8일(현지 시각) “새로운 형태의 ‘CAR(키메라 항원 수용체)-T세포’ 치료제로 다발성 골수종 환자의 치료 기간을 세 배 이상 늘리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다발성 골수종은 골수에서 면역체계를 담당하는 백혈구의 한 종류인 형질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분화, 증식하면서 생기는 혈액암이다. 서구에서는 림프종 다음으로 흔한 혈액암이지만 기존 치료제로는 재발까지 3~4개월 정도 병을 억제하는 데 그쳤다.

연구진은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20군데 병원에서 다발성 골수종 환자 128명에게 CAR-T세포 치료제를 투여한 결과 평균 12개월 동안 병이 재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은 앞서 평균 6번씩 병이 재발한 경험이 있었다. 이번 임상 2상 시험 결과는 국제 학술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실렸다.

골수종 치료제 CAR-T세포 제조 과정. 환자의 혈액에서 면역세포인 T세포를 추출한 다음 몸밖에서 암세포를 인지하는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를 주입한다. 이를 대량 배양한 다음 환자에 다시 투여하면 암세포 표면의 항원 단백질에 결합해 암세포를 파괴한다./미 텍사스대

◇면역세포에 암세포 찾아내는 유전자 붙여

CAR-T세포 치료제는 스위스 노바티스가 2017년 미국에서 ‘킴리아’라는 제품명으로 림프종과 백혈병 치료제로 처음 허가를 받았다. 우리나라도 지난 5일 킴리아를 허가했다. 키메라 T세포는 이름대로 신화에서 여러 동물의 모습을 가진 괴물 키메라처럼, 병원체에 감염된 세포를 죽이는 면역세포인 T세포에 암세포의 항원을 찾는 유전자를 결합했다는 뜻이다. 즉 공격군에 정찰 능력까지 결합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에 미국 제약사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와 바이오기업 블루버드 바이오가 개발한 새로운 키메라 T세포를 임상시험했다. 먼저 다발성 골수종 환자의 혈액에서 T세포를 추출한 다음, 정찰병이 될 유전자를 주입했다. 이러면 T세포 표면에 암세포에 있는 특정 항원 단백질에 결합하는 수용체가 생긴다. 이후 대량 배양한 키메라 T세포를 다시 환자에게 주사했다. 키메라 T세포는 암세포 항원에 달라붙고 파괴했다.

임상시험에서 환자의 4분의 3이 키메라 T세포 치료에 일정 정도 반응했다. 3분의 1은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졌다. 연구진은 “골수종 환자를 치료할 첫 번째 세포 치료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키메라 T세포 치료를 받은 환자가 1~2년 내 다시 병이 재발할지 아직 모르지만 다른 치료법을 적용하기까지 시간은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부작용도 없어 환자의 삶의 질이 높아진 것도 큰 장점이라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9월 BMS의 키메라 T세포 치료제인 ‘이데캅타진 비클루셀(약칭 이데셀)’을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로 우선심사한다고 밝혔다. FDA는 이달 말 최종 승인 결정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데셀이 승인되면 노바티스의 킴리아, 미국 길리어드의 ‘예스카타’와 ‘테카터스’, BMS의 ‘브레얀지'에 이은 다섯 번째 CAR-T세포 치료제가 된다. 앞서 치료제는 모두 림프종 치료제이고, 골수종 치료제로는 이데셀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