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KAIST를 찾은 삼성브러쉬의 장성환(92) 회장과 안하옥(90) 여사 부부. 200억원대 부동산을 KAIST에 기부했다. /KAIST

90대 회장님은 구두가 헤질 때까지 신을 정도로 근검절약이 몸에 배었다. 그 부인은 물티슈도 물에 헹궈 여러 번 썼다. 북한에 남은 어머니가 월남한 자식들 때문에 배급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일만 생각하면 한 푼도 쓰기 힘들었다.

늘 “돈은 쓰지 않아야 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구두쇠 부부가 2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기부했다. 화장도구 업체인 삼성브러쉬의 장성환(92) 회장과 안하옥(90) 부부는 지난 13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발전기금 약정식을 갖고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2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KAIST에 기부했다. 장 회장 부부가 기부한 부동산은 580㎡(175평)의 대지 위에 건축된 지상 6층 지하 2층 규모의 빌딩이다.

황해도 남촌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장성환 회장은 18세이던 1947년 월남해 고학으로 연세대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먼저 결혼한 누이를 찾아 월남했지만 역시 형편이 좋지 않아 혼자 힘으로 학교를 다녔다. 장 회장은 무역업에 뛰어들어 1992년에 중국 텐진에서 화장품 브러시 공장을 세웠다. 나중에 샤넬, 디올, 에스티 로더 등 세계적인 화장품 업체에도 납품할 정도로 성공했다.

휴지 한 장 허투루 쓰지 않는 장 회장이지만 학생들 돕는 일에는 아끼지 않았다. 그는 “고학생으로 공부하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어느 정도 재산을 모으고 나니, 우리 부부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오른팔이 되어주자고 자연스럽게 뜻을 모았다ˮ고 밝혔다.

장 회장은 이번에 자수성가한 기업인들의 통 큰 기부 릴레이를 이어갔다. 장 회장 부부는 경기도 용인의 한 실버타운에서 이웃사촌으로 잘 알고 지내던 서전농원 김병호 회장 부부가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KAIST에 350억 원을 기부하는 것을 보고 공감했다고 한다. 장 회장은 “기부에 대한 마음을 정한 뒤로 여러 기부처를 두고 고민했지만, 국가 미래를 위한 투자가 가장 보람될 것이라는 생각에 KAIST를 선택했다ˮ고 밝혔다.

장 회장이 사는 실버타운 주민이 KAIST에 고액을 기부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2010년과 2012년 160억 원을 KAIST에 기부한 고(故) 조천식 한국정보통신 회장도 같은 실버타운 주민이었다. 지난해 국가에 추사 김정희 선생의 수묵화 ‘세한도’를 기부한 손창근(92) 선생도 이웃으로 2017년 50억 원 상당 부동산과 현금 1억 원을 KAIST에 기부했다.

지난 13일 발전기금 약정식에서 삼성브러쉬의 장성환(92) 회장과 안하옥(90) 부부가 200억원대 부동산을 KAIST에 기부했다. 왼쪽부터 이광형 KAIST 총정, 안하옥 여서, 장성환 회장, 박희경 KAIST 발전재단 상임이사./KAIST

장 회장은 뇌경색을 앓아 거동이 불편한 가운데 이달 초 KAIST를 직접 찾아 기부를 논의하고 13일 약정식에도 참석했다. 앞서 김병호 회장 부부의 기부금이 10여 년간 인재양성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도 챙겼다고 한다.

장 회장은 “이광형 총장을 직접 만나 KAIST의 비전과 미래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KAIST가 세계 최고 대학으로 성장해 우리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ˮ고 밝혔다. 부인 안하옥 여사는 “부부의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어서 아주 즐겁고 행복하다ˮ며 “우리 부부의 기부가 과학기술 발전에 보탬이 되어 우리나라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ˮ고 했다.

장 회장 부부는 지난 2일 해당 부동산의 명의 이전 절차를 모두 마쳤다. KAIST는 부부의 뜻에 따라 우수 과학기술 인재양성 사업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광형 총장은 “기부자의 기대를 학교 발전의 동력으로 삼아 세계 최고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