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바로 광유전학(光遺傳學)이다. 몸속 깊은 곳까지 빛이 파고들어 행동은 물론, 기억까지 조절할 수 있다. 초파리와 생쥐를 비롯한 동물 실험에서 잇따라 성과가 나오고 있다. 사람에게 적용되면 알츠하이머 치매 같은 난치병도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 국내외 연구자들이 면역반응이나 열 발생 같은 부작용을 줄이면서 간편하게 몸 안에 넣어서 사용할 수 있는 광유전학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녹조류의 빛 감지 단백질 활용

광유전학(optogenetics)은 빛(opto)과 유전학(genetics)을 결합한 신경과학의 한 분야다. 일종의 광센서 단백질에 빛을 쪼여 연결된 신경세포를 조절한다. 광유전학이 나오기 전까지는 신경세포를 촉진·억제하기 위해서는 전기나 약물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방법들은 주변의 다른 세포까지 영향을 줘 정교하게 신호를 조절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광유전학은 독일 뷔르츠부르크대의 게오르크 니겔 교수팀이 2002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시작됐다. 연구진은 빛을 향해 움직이는 생물인 ‘클라미도모나스’라는 녹조류에서 빛을 감지하는 단백질을 발견했다. ‘채널로돕신’이란 단백질은 빛을 받으면 전류를 만들었다.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의 칼 다이서로스 교수팀이 채널로돕신을 생쥐의 신경세포에 이식하며 연구를 발전시켰다. 현재 파킨슨병, 알츠하이머, 우울증 등 다양한 뇌 질환 치료에 광유전학을 적용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죽부인 모방해 면역반응 차단

광유전학의 동물실험 결과를 사람에 적용하려면 무엇보다 부작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 분광학 및 동력학 연구단의 박홍규 교수팀은 “부작용 없이 빛으로 뇌신경을 자극해 뇌 신호를 기록할 수 있는 나노 장치를 개발했다”고 19일 국제 학술지 ‘나노 레터스’에 발표했다.

뇌신경을 자극하고 반응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딱딱한 금속 소재의 탐침이 뇌에 이식된다. 이는 뇌 세포를 손상하거나 주변에 면역반응을 일으켜 신호 측정을 어렵게 만든다. 연구진은 뇌와 비슷한 힘을 견디는 재질의 그물 구조 탐침을 개발했다. 대나무로 만든 죽부인처럼 생긴 탐침은 뇌 조직과 성질이 유사하고 기존보다 1000배 이상 유연해 뇌신경에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또한 연구진은 여기에 1㎝ 길이의 빛을 보낼 수 있는 통로를 결합해 나노 죽부인의 끝까지 빛을 잘 전달할 수 있게 했다. 빛이 전용 통로로 간접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열로 인한 뇌 손상이 없다.

연구진은 생쥐의 뇌에 개발한 장치를 삽입해 신경 자극과 동시에 신호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사람 뇌세포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탐침 기술을 개선하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투명전극과 자가발전장치도 개발

광유전학 장치의 성능도 개선되고 있다. 먼저 빛을 더 잘 전달하고 신호를 잘 잡는 기술이다. 카이스트(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이현주·이정용 교수와 의과학대학원 이정호 교수팀은 지난해 실시간으로 뇌 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투명 전극을 개발했다. 금속 전극은 빛 전달을 방해하고 빛을 쬘 때 잡음 신호가 발생한다. 연구진은 고분자를 이용해 유연하고 투명한 미세전극을 만들면 잡음 신호가 10분의 1 로 줄어든다고 밝혔다.

별도의 전원이 필요 없는 자가발전형 장치도 나왔다. 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 기계공학부 이종호 교수와 의생명공학과 김태 교수팀은 “인체삽입형 태양전지로 LED(발광다이오드) 소자를 구동시켜 빛으로 뇌를 조절하는 웨어러블(착용형) 기기를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바이오센서&바이오일렉트로닉스’ 4일 자에 밝혔다.

현재 많은 장치가 외부와 연결된 선을 통해 빛을 쬐는 방식이다. 무선으로 작동하는 장치도 있지만 자기장이 작동하는 환경에서만 쓸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연구진은 태양전지를 피부 아래에 이식하고 근적외선으로 전기를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뇌에 삽입된 발광부는 이 전기로 특정 주파수로 점멸하는 빛을 발생시켜 신경을 조절한다. 연구진은 생쥐 실험에서 근적외선으로 만들어진 전력으로 빛을 작동시켜 생쥐의 수염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