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태안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터지자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2호가 피해 지역 촬영에 나섰지만 구름 때문에 실패했다. 하지만 독일의 테라사-엑스(TerraSAR-X) 위성은 사고 해역을 촬영했다. 이 위성에는 광학 카메라 대신 영상레이더(SAR)가 장착됐기 때문이다.
영상레이더 위성이 지구를 감시하는 새로운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처음 군사용으로 쓰이던 영상레이더 위성은 지질 연구에 이어 최근에는 민간에서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철도와 건물, 송유관 상태를 점검하고 재난 피해를 추산하는 등 전천후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찰에서 과학 연구, 상용 임무로 발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2월 26일 자에서 영상레이더가 민간에서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레이더 혁명’을 가져오고 있다고 밝혔다. 2018년 이래 민간 영상레이더 위성이 두 배로 증가했으며, 관련 시장도 40억달러(약 4조5400억원) 규모에서 5년 내 두 배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상레이더는 무엇보다 기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윤재철 박사는 “영상레이더는 위성에서 지상으로 전파를 쏘고 반사파를 수신해 물체의 형태를 파악하는 것”이라며 “가시광선을 수신하는 카메라와 달리 레이더는 밤이나 구름에 상관없이 전파를 수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2013년 발사한 아리랑5호가 영상레이더를 장착했다.
영상레이더 위성의 핵심 장비는 안테나다. 크면 클수록 반사파를 더 많이 수신해 해상도가 높아진다. 그렇다고 위성 안테나를 무작정 키울 수도 없다. 과학자들은 일종의 합성 기술로 문제를 해결했다.
위성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레이더 반사파를 연속적으로 수신한다. 이때 가까이 다가가는 쪽에서 오는 전파의 주파수가 멀어지는 쪽에서 온 주파수보다 커진다. 앰뷸런스가 가까이 오면 소리가 커지고 멀어지면 작아지는 것과 같다. 이런 합성 기술로 영상레이더의 해상도는 50㎝까지 높아졌다. 위성이 이동한 거리만큼 레이더 안테나의 지름이 길어지는 효과가 생긴 셈이다.
◇간섭 기술로 밀리미터 해상도 구현
영상레이더 기술은 1950년대부터 정찰위성에 활용됐다. 최근에는 지구과학 연구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영국 브리스틀대 연구진은 올 초 아프리카 동부 에티오피아의 화산이 활동을 멈춘 사화산(死火山)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영상레이더 위성으로 관측해보니 인구 30만명이 넘게 사는 도시 근처의 화산은 지표면이 1년에 6.6㎝씩 부풀었다. 지하의 마그마가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영상은 지표면의 움직임을 ㎜ 단위까지 포착해냈다. 바로 간섭영상레이더(InSAR) 기술 덕분이다. 위성이 같은 지역을 시간을 달리하며 촬영한다. 각각의 영상에서 파도의 골과 마루처럼 반사파의 위상이 다르게 나타나면 지표면이 달라졌다는 증거가 된다. 이 방법으로 지표면이 오르내린 것을 ㎜ 단위로 알아낸다.
지상의 위성항법시스템(GPS) 기지국도 위성 신호를 수신해 지표면의 움직임을 ㎜ 단위로 알아낼 수 있지만 위성은 한 번에 수백㎞씩 관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덕분에 지진으로 광범위한 지역의 단층이 어긋난 것을 알아낼 수 있다. 같은 방법으로 극지방 얼음이 이동한 형태를 추적해 온난화로 빙하가 녹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민간 영상레이더 위성 두 배로 증가
최근 영상레이더 위성을 활용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부터 발사 건수에서 민간이 정부를 앞질렀다. 현재 50기 가까운 영상레이더 위성이 우주에 나가 있는데 올해 10여 기가 추가될 예정이다. 모두 민간 위성이다.
지난 1월 24일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 9 로켓에는 핀란드 업체인 아이스아이(Iceye)의 소형 영상레이더 위성 3기가 실려 발사됐다. 회사는 소형 냉장고만 한 이 위성 100기로 지구 감시망을 구축해 건물이나 댐 상태를 매 시간 감시할 계획이다. 아이스아이 공동 창업자인 페카 로리라는 사이언스에 “GPS가 나올 때 우버나 피자 배달에 쓰일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며 “영상레이더도 GPS처럼 생각지 못한 다양한 곳에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