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의 모낭 아래에 있는 진피 유두 세포(녹색). 모낭 줄기세포를 촉진하는 단백질을 분비한다. /미 하버드대

지난해 1~5월 중국 우한의 코로나 확진자 중 4분의 1은 증상이 나오고 6개월 지나 탈모(脫毛)를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가 올 초 나왔다. 코로나를 앓으면서 온몸에 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재미(在美) 한국인 과학자가 스트레스가 탈모를 일으키는 구체적인 과정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연구가 발전하면 장차 탈모 치료에 새 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하버드대의 쉬야제 교수와 박사 후 연구원인 최세규 박사 연구진은 지난달 3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모낭 줄기세포의 휴지기를 연장시켜 탈모를 유발하는 과정을 생쥐 실험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최 박사는 이번 논문의 제1 저자이다.

머리카락은 성장기와 퇴화기, 휴지기를 순환한다. 성장기에는 피부 밑에 있는 모낭 줄기세포가 활발하게 작동해 머리카락이 새로 자라다가, 휴지기에 들어가면 모발 재생이 중단되고 머리카락이 빠진다.

연구진은 생쥐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론이 피부의 진피 유두 세포에 작용해 모낭 줄기세포의 휴지기를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호르몬은 사람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과정은 이렇다. 진피 유두 세포는 모낭을 받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GAS6이란 단백질이 분비된다. GAS6이 줄기세포에 결합하면 모발 재생이 시작된다. 연구진은 생쥐의 우리를 기울이거나 갑자기 빛을 비추면 생쥐의 신장 위에 있는 부신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와 진피 유두 세포가 GAS6를 분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로 인해 줄기세포가 다시 휴지기에 머문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생쥐의 부신을 제거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아예 나오지 않으면서 모낭 줄기세포의 휴지기가 60~100일에서 20일로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생쥐는 다시 털이 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이든 생쥐도 털이 자랐다.

하지만 스트레스 호르몬도 신체에서 필요한 기능이 있다. 머리카락을 위해 무조건 차단할 수는 없다. 연구진은 대신 줄기세포 작동을 촉진하는 GAS6 단백질을 추가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생쥐의 피부에 GAS6을 전달했더니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줄기세포가 털을 재생했다.

최 박사는 “정상 상황이든 스트레스 조건이든 GAS6 추가만으로 휴지기에 있는 모낭 줄기세포가 다시 모발 성장을 하도록 촉진할 수 있다”며 “앞으로 사람의 모발 성장을 촉진하는 방법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의대의 루이 이 교수는 이날 네이처 논평 논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과 모발 성장 사이의 작동 과정을 처음으로 밝힌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사람과 생쥐의 모낭 줄기세포는 성장기와 휴지기 기간이 크게 다른 만큼 생쥐 실험 결과를 바로 사람에게 적용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