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과학자들이 사람 줄기세포를 원숭이 수정란(배아)에 이식해 20일까지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과학계에서는 “다른 동물의 몸에서 사람 장기를 키워 환자에게 이식하는 ‘이종(異種) 장기 이식’을 실현하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연구가 무분별하게 진행되면 영화 ‘혹성탈출’처럼 사람의 의식을 가진 원숭이가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소크 연구소 후안 카를로스 이즈피수아 벨몬테 교수와 중국 쿤밍이공대 지웨이지 교수 공동 연구진은 15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셀’에 “사람 피부세포에서 유래한 줄기세포를 긴꼬리원숭이의 배아 132개에 25개씩 이식해 20일까지 키웠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사람 피부세포를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랄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바꿨다. 이를 수정된 지 6일 지난 원숭이 수정란에 이식했다. 이식 후 10일까지 배아 103개에서 사람 세포가 자랐고, 19일이 지나면서 배아 3개에서만 사람 세포가 생존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사람 세포가 다른 동물보다 원숭이 배아에서 훨씬 잘 자랐다는 점이다. 과거 양이나 돼지 배아에 사람 줄기세포를 이식한 실험에서는 세포 10만 개 중 한 개꼴로 사람 세포였지만, 이번에는 사람 세포가 전체 배아 세포 중 평균 3~4%(10만개 중 3000~4000개)까지 차지했다. 한 배아는 사람 세포 비율이 7%나 됐다. 벨몬테 교수는 “다른 동물 배아는 사람 세포를 경쟁자로 배척하지만 원숭이 세포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 세포와 협력해 배아를 발달시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배아를 대리모 자궁에 이식하지 않고 체외 배양했으며, 윤리 문제 등을 고려해 20일째는 이를 파괴했다.

◇동물에서 이식용 장기 얻는 키메라 연구

이번 연구는 ‘키메라(chimera)’ 연구의 일환이다. 사자의 머리에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한 그리스 신화 속 동물처럼 다른 동물에서 사람 줄기세포를 키워 인간 발생과 질병을 연구하고 나아가 갈수록 부족해지는 이식용 사람 장기까지 얻자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게 2017년 미국 스탠퍼드대 나카우치 히로마쓰 교수의 실험이었다. 시궁쥐의 몸에서 서로 다른 종인 생쥐의 체장을 키워 당뇨병 걸린 생쥐에게 이식했더니 당뇨병이 치료된 것이다. 같은 해 벨몬테 교수는 사람 줄기세포를 돼지 배아에 이식했다. 수정란을 대리모 암컷 돼지의 자궁에 이식해 3~4주 배양하자 돼지 태아의 근육과 장기에서 사람 세포가 자랐다.

이번 연구는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인 원숭이와 처음으로 혼합 배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키메라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미국 예일대의 알레한드로 데 로스 앙헬레스 교수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이번 논문은 줄기세포와 이종 키메라 분야의 기념비적 성과”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돼지와 사람의 혼합 배아는 중국어와 프랑스어 관계라면 원숭이 조직에서 자라는 사람 세포는 서로 가까운 스페인어와 프랑스어쯤 된다”고 설명했다.

◇영화 ‘혹성탈출’의 현실화 우려도

원숭이를 이용한 이번 키메라 배아 실험은 중국에서 진행됐다. 미국에서는 규제로 인해 정부 연구비를 받고 키메라 배아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원숭이 수정란을 구하기 쉽다는 점도 한 요인이었다. 연구진은 “복수 연구기관에서 생명윤리심사를 거쳐 실험이 진행됐다”고 했지만 여전히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미과학공학의학한림원은 지난주 발표한 보고서에서 키메라 연구에 대해 사람 신경세포가 동물의 뇌로 들어가 정신 능력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키메라 배아는 신경체계를 아직 형성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런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 하지만 영국 옥스퍼드대의 생명윤리학자인 줄리언 사불레스쿠 교수는 이날 BBC에 “인간과 동물의 키메라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며 “이번에는 20일째 배아를 파괴했지만 이식용 장기를 위해 인간과 동물의 키메라가 성체로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키메라(chimera)

사자의 머리에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한 그리스 신화 속 동물. 생명과학에서는 한 동물에서 서로 다른 동물의 세포가 같이 자라는 것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