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포스텍(포항공대) 박태준학술정보관 5층. 무(無)학과 신입생 정하우(19)씨가 VR(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고 이리저리 손짓했다. 물리학 실험 실습 강의를 듣는 중이었다. 정씨의 눈앞엔 물리학과 대학원생 조교가 실험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고개를 돌려 실험 기구를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었다. 정씨는 “무선 인터넷이 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VR로 실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며 “실험실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잘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포스텍이 올해 신입생 320명 전원을 대상으로 지난 19일부터 VR 수업을 시작했다. VR 기기를 활용한 비대면 교육 실험이다. 다른 대학에서도 VR을 수업에 활용한 예는 있었지만 신입생 전원을 대상으로 한 건 포스텍이 처음이다. 코로나 시대에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든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첫 대상은 1학점짜리 물리학 실험 실습 과목이다. 학생들이 직접 참여해야 하는 실습수업에 VR을 구원투수로 투입한 것이다. 와이파이만 되는 곳이라면 신입생 320명이 저마다 다른 장소에서 실험 수업을 할 수 있는 셈이다. 포스텍의 교육 실험이 성공한다면 비대면 교육이 코로나 이후 대학 교육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포스텍 신입생 전원 VR 수업 수강
코로나로 대학 교육은 사실상 일시 정지 상태다. 포스텍의 경우 학부생 대상 강의 382개 중 310개(81.2%)가 비대면 수업으로 이뤄지고 있다.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일부 수업만 제한적으로 대면 수업을 한다. 교수와 학생 모두 수업의 질에 대한 고민이 컸다.
이를 해결하고자 전자전기공학과 김욱성 포스텍 교수가 지난해 2학기부터 VR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김 교수는 VR 기기를 활용한 수업 콘텐츠 개발을 시작했고 학교는 약 1억4000만원을 들여 신입생 320명 전원에게 VR 기기를 나눠줬다. VR 기기는 학생들이 사용하다가 졸업할 때 반납한다고 한다. 물리학과도 VR 프로젝트에 합류해 실험 수업 영상을 만들었다. 360도 카메라로 조교들의 실험 장면을 찍은 것이다.
19일부터 VR을 활용한 물리학 실험 수업이 진행 중이다. 학생들이 VR로 실험 수업에 참여한 뒤 각자 따로 실험해보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전에는 홈페이지 동영상이나 문서 파일을 보고 실험을 따라 했었다. 윤건수 입학학생처장(물리학과)은 “실험 강의는 눈으로 직접 봐야 학생들이 학문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생동감 있는 VR 강의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면 비대면 수업의 오프 캠퍼스 구상
포스텍은 앞으로 새로운 과목들에도 VR 강의를 적용할 계획이다. 실험뿐 아니라 다양한 전공에도 VR은 활용될 수 있다. 예컨대 원자력 전공에서 사람이 잘 들어가기 어려운 원자로 내부를 VR로 보여줄 수 있다. 김욱성 교수는 “위험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곳을 드론·로봇으로 영상을 찍어 학생들에게 실감 나게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관련 수업 교수가 VR 수업의 콘텐츠 설계를 하면 외부 전문 업체가 영상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포스텍은 첨단 테크를 바탕으로 코로나 이후에도 전면적인 비대면 교육 실험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일명 ‘오프(Off) 캠퍼스’ 계획을 구상 중이다. 학생들이 한 학기 정도는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되, 남는 시간은 해외 어학연수 등 자기 계발에 활용하라는 것이다. 김종규 기획처장(신소재공학과)은 “포스텍뿐 아니라 지방 대학들이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장소에 제약도 없고 언제든지 다시 반복해서 볼 수 있어 실습이 중요한 다른 대학들에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