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꽃의 여신 플로라 흉상./프로이센 문화유산 재단

4월은 꽃의 계절이다. 목련, 벚꽃에 이어 개나리, 철쭉, 이팝나무 꽃이 거리를 수놓고 있다. 꽃이 핀 거리에서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인다. 보티첼리의 명화 ‘비너스의 탄생’에서 로마신화 속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꽃의 여신 플로라가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플로라 여신이 올 4월 과학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플로라의 흉상이 그보다 훨씬 뒤에 제작됐다는 사실이 과학 분석을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화학연구소의 이나 레히헤 박사 연구진은 지난 15일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플로라 흉상을 연대 측정한 결과 19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독일 베를린의 보데 박물관에 있는 플로라의 흉상은 높이가 70㎝이고 무게가 28㎏이다. 카이저 프리드리히 박물관의 초대 관장이던 빌헬름 폰 보데가 1909년 런던에서 구입했다. 이 박물관은 1956년 보데 박물관이 됐다. 보데는 다빈치 작품이라고 확신했다. 독일 전문가들도 위대한 예술품을 독일이 낚아챘다고 환호했다.

당시에도 흉상의 기원에 의문을 제기한 학자가 많았다. 플로라 흉상은 향고래의 머리에서 나온 왁스인 경랍(鯨蠟)으로 만들었다. 경랍은 광택제나 화장품 원료로 쓰였다. 르네상스기에는 경랍으로 만든 작품은 드물었고 19세기에 주로 쓰였다. 게다가 흉상 뒤에서 19세기의 신문과 나무 조각이 발견되기도 했다.

아프리카 모리셔스 앞바다의 향고래 어미와 새끼. 19세기 화가들은 향고래에서 나온 왁스로 조각상을 만들었다,/위키미디어

영국의 조각가 리처드 코클 루카스(1800~1883)의 작품이란 주장도 나왔다. 루카스의 아들은 아버지가 흉상을 만들고 자신이 색을 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과학기술로는 정확한 연대를 측정하지 못했다. 흉상 뒤에서 나온 19세기 신문은 나중에 붙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파리화학연구소 연구진은 이번에 흉상이 대부분 경랍으로 만들어졌지만 일부 밀랍 성분도 첨가됐음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그 속에 들어있는 탄소가 시간이 지나면서 방사능을 내고 질량이 다른 동위원소로 바뀐 비율을 조사했다. 과거 분석과 달리 다른 해양동물의 왁스를 비교해 연대 측정 정확도를 높였다. 그 결과 플로라 흉상의 구성 성분은 연대가 1700년 이후로 나왔다. 연구진은 다른 증거를 볼 때 흉상은 19세기에 제작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는 문화 유산과 산업, 인간이 자연과 상호작용한 것을 보여주는 소중한 사례”라고 밝혔다. 산업혁명기에 기계의 윤활유를 얻기 위한 포경이 급증하면서 고래 부산물이 사회 곳곳에서 활용됐다. 결국 꽃의 여신은 르네상스 문화가 아니라 19세기 산업혁명이 탄생시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