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라기 후기 약 250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한 티라노사우루스. 온전히 발굴된 화석이 32마리밖에 없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UC버클리

공룡계의 스타는 단연 영화 ‘쥬라기공원’의 로고에도 나오는 티라노사우루스이다. 몸길이 12m에 최대 9톤 가까이 가는 몸무게로 모든 동물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명성에 비해 아직도 모르는 점이 많다. 티라노사우루스는 얼마나 빨랐을까, 혼자 다니는 고독한 사냥꾼이었을까, 집안을 총동원했을까. 최근 과학자들이 그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티라노사우루스의 진면목을 잇따라 밝혀냈다.

◇지구에 등장한 티라노는 25억 마리

티라노사우루스는 백악기 후기(6800만년~6550만년 전)에 살았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공룡이 살았을까. 캘리포니아대(UC) 샌타바버라의 존 다무스 교수는 동물의 개체 밀도를 신체 크기와 연관지었다. 즉 같은 면적에 쥐보다 코끼리의 수가 적다는 이른바 ‘다무스의 법칙’이다.

UC버클리의 찰스 마셜 교수는 지난 16일 ‘사이언스’에 다무스 법칙을 근거로 티라노사우루스의 개체 밀도를 100 ㎢ 당 약 1마리로 계산했다. 캘리포니아주만 한 면적에 3800마리쯤 사는 셈이다. 오늘날 북미 대륙 전체에 동시에 살았던 개체 수는 약 2만 마리가 된다.

또 티라노사우루스의 한 세대가 19년이므로 멸종에 이르기까지 250만 년 동안 12만7000세대에 걸쳐 총 25억마리가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화석으로 발굴된 티라노사우루스는 32마리에 그친다. 그만큼 대형 육식공룡이 화석으로 남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공룡의 제왕 티라노사우루스 미스터리

2014년 미국 토지관리국의 고생물학자인 앨런 티투스 박사는 유타주 남부에서 티라노사우루스 무리의 화석을 발굴했다. 어른 공룡 1마리와 젊은 공룡 1마리, 어린 공룡 3마리였다.

티투스 박사와 아칸소대의 셀리나 수아레즈 교수 공동 연구진은 지난 19일 국제 학술지 ‘피어제이(PeerJ)’에 “연대측정을 통해 공룡 가족이 동시에 홍수로 화석이 됐으며, 이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오늘날 늑대처럼 가족이 함께 살면서 사냥도 같이 한 증거가 된다”고 밝혔다.

앞서 캐나다와 미국 몬태나주에서도 티라노사우루스 무리 화석이 발굴된 적이 있다. 하지만 공룡의 두뇌가 집단 사냥을 할만큼 발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피부 덮은 것은 털일까 비늘일까

영화를 보면 티라노사우루스가 사람들이 탄 차를 따라잡는 장면이 나온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 연구진은 지난 21일 ‘왕립학회 오픈 사이언스’에 티라노사우루스의 보행 속도는 시속 5㎞가 채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람이 빨리 걸으면 도망갈 수 있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은 공룡의 몸무게와 엉덩이 높이, 발자국 화석을 토대로 티라노사우루스의 보행 속도를 시속 7.2~10.8㎞로 추산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연구진은 몸무게와 키보다 꼬리에 주목했다. 공룡 꼬리가 위아래로 흔들리면서 균형을 잡아주고 몸이 앞으로 가게 해준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네덜란드에 있는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의 꼬리를 토대로 공룡의 컴퓨터 모델을 만들었다. 꼬리 근육의 탄성과 흔들리는 주기를 감안하면 평균 보행 속도는 시속 4.6㎞로 나왔다.

달리기는 이전보다 더 빠를 수 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주행 속도는 시속 16~40㎞로 추정됐다. 그보다 빠르면 뼈가 부서진다고 봤다. 반면 네덜란드 연구진은 꼬리가 충격을 흡수한다면 뼈 손상 없이 더 빨리 뛸 수 있다고 밝혔다.

티라노사우루스의 꼬리 근육을 토대로 재구성한 보행 모습. 시속 4.6km로 사람보다 빠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

1993년 쥬라기공원 개봉 후 가장 크게 변한 공룡의 이미지는 털이다. 한 예로 2012년 몸길이 9m의 대형 육식공룡 유티라누스가 털로 덮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 뒤에 나온 사촌 격인 티라노사우루스도 털이 있었을까.

2017년 미국 휴스턴 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은 유일한 티라노사우루스의 피부 화석을 조사했더니 목과 골반, 꼬리에 털은 없고 비늘만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티라노사우루스는 열을 잘 보존할 수 있어 이전에 단열 역할을 하던 털이 사라졌다고 추정했다. 만약 털이 있다면 등에만 일부 남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