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동안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해조류의 유전자를 눈에 이식받고 다시 횡단보도의 흰 줄을 볼 수 있게 됐다. 색은 볼 수 없지만 집안 물건은 구분할 수 있어 시각장애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스위스 바젤대의 보톤드 로스카 교수 연구진은 24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광유전학(光遺傳學, optogenetics) 기술로 시각장애인의 시력을 부분적으로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광유전학은 빛을 쪼여 신경세포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2005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녹조류에서 빛을 전기로 바꾸는 단백질을 동물의 신경세포에 이식했다. 덕분에 빛을 쪼이면 원하는 대로 신경세포를 제어할 수 있다. 광유전학 기술을 사람에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횡단보도 구분하고, 집안 가구 인식
연구진은 망막색소변성증(RP)으로 40년간 실명 상태로 있던 58세 프랑스 남성에게 광유전학 기술을 적용했다. RP는 녹내장, 당뇨망막병증과 함께 실명을 부르는 3대 질환으로 전 세계에 150만명의 환자가 있다. 프랑스 남성은 RP로 망막의 광수용체 세포를 잃었다. 광수용체 세포는 옵신 단백질을 이용해 빛을 전기신호로 바꾼다. 결국 옵신이 없어 사물에서 반사된 빛을 뇌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성은 전기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신경세포는 손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옵신을 회복시켜 사물에서 반사된 빛을 전기신호로 바꾸기만 하면 다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진은 광유전학에서 주로 쓰는 해조류의 옵신 유전자를 남성의 망막에 이식했다. 인체에 해가 없는 바이러스를 유전자 전달체로 이용했다. 몇 달 지나자 눈에서 다시 옵신 단백질이 만들어졌다. 남성은 망막에 빛을 보내는 특수 고글을 썼다. 고글은 사물에서 반사된 빛을 증폭한 다음 남성의 망막에 옵신이 반응하는 황색 파장의 빛을 보냈다.
남성은 이제 고글을 쓰고 밖으로 나가 횡단보도의 흰 줄을 감지할 수 있게 됐다. 실험실에서는 흰 책상에 놓인 어두운 색의 공책과 상자를 찾을 수 있었다. 남성은 일상에서도 고글을 쓰고 접시나 전화를 찾고, 가구나 문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회복됐다고 밝혔다. 뇌파를 측정해보니 시각중추의 활동이 두드러져 실제로 시력이 회복됐음을 알 수 있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추가 임상 통해 안전성, 효능 확인 필요
연구진은 다른 시각장애인 7명에게도 광유전학 시술을 했지만 코로나 대유행으로 시력 회복 훈련 과정을 다 마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환자는 옵신 유전자를 더 많이 투여해 시력이 더 회복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 결과는 광유전학 기술이 망막색소변성증 환자의 시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바젤대 연구진은 실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려면 추가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효능을 좀더 입증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