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 영상. 노랗고 붉게 보이는 부분은 베타 아밀로이드이다(왼쪽). 치료제 투약 후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Nature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7일(현지 시각)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인 ‘아두카누맙(상품명 에드유헬름)’이 임상시험에서 인지능력 감소 속도를 늦추는 효과가 입증됐다고 시판 후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임상 4상 시험을 조건으로 승인했다.

알츠하이머 치료 신약이 FDA 승인을 받은 것은 2003년 이래 처음이다. 지금까지 허가 받은 알츠하이머 치료제는 기억력 감소 증상을 치료하는 것으로 질병의 진행 자체를 늦춘 약은 없었다.

◇아밀로이드 단백질 공략하는 항체

아두카누맙 승인은 과학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해 2021년에 주목되는 10대 과학뉴스 중 하나로 미국 바이오기업 바이오젠의 알츠하이머 치료제인 아두카누맙을 꼽았다.

아두카누맙은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인 베타 아밀로이드에 결합하는 항체 단백질로 만들었다. 베타 아밀로이드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덩어리를 형성하면 오히려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고 알려졌다.

아두카누맙은 두 건의 임상 3상 시험 결과가 서로 상충돼 승인 여부는 불투명했다. 바이오젠은 2019년 3월 임상시험에서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과 사고력을 개선하는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임상시험 중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해 10월 회사는 고용량 약물을 투여한 환자의 임상시험 자료를 다시 분석했더니 기억과 사고력, 일상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의 감소를 22%까지 늦췄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 결과를 토대로 FDA에 신약 승인을 신청했다.

FDA는 이날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에 대한 임상시험은 효능에 대해 아직도 불확실성이 남아있다”면서도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 쌓이는 독성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를 제거한다는 점에서 환자에게 중요한 효과를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어 허가를 하기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글로벌 제약사들이 베타 아밀로이드를 공략하기 위해 수십 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미 FDA가 승인한 바이오젠의 알츠하이머 신약 '에드유헬름(Aduhelm)'. 사진은 에드유헬름 약병과 포장 상자의 모습. /바이오젠

◇FDA, 자문위 반대 불구하고 승인 결정

일부 연구자와 환자 단체들은 FDA의 이번 결정을 반겼지만, 신약 허가 기준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미국 예일대 의대의 FDA 규제정책 전문가인 조셉 로스 교수는 이날 사이언스에 “이번 허가는 FDA와 전반적인 보건시스템에 막대한 피해를 줄 것으로 보인다”며 “환자와 보험사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약에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FDA는 이번에 예외적인 승인을 했다. 앞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FDA 자문위원회는 지난해 11월 6일, 최종적으로 아두카누맙의 승인을 반대했다. FDA는 자문위원회의 권고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렇다고 의무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로스 교수는 2008~2015년 FDA 신약 승인 결정의 89%가 자문위원회의 결정을 따랐다고 밝혔다.

한편 다른 제약사도 베타 아밀로이드를 공략하는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제약사 일라이 릴리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도나네맙’이 임상 2상 시험에서 치매 환자의 증상 진행을 32% 늦추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은 릴리가 추가 임상을 거쳐 2023년에 FDA 승인을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아밀로이드 결합 항체 치료제인 ‘레카네맙’도 지난해 여름 임상 3상 시험을 시작했다. 두 회사는 지난 4월 ‘알츠하이머 연구 및 치료’에 발표한 논문에서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에 대한 레카네맙의 2b상 임상시험 결과, 뇌에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감소하고 임상 증상의 진행이 억제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