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영구 동토층에서 나온 2만4000년 전 윤충. 온도를 높이고 영양분을 주자 다시 살아나 자손까지 퍼뜨렸다./커런트 바이올로지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영구동토층(永久凍土層)에서 좀비가 나타났다. 수만 년 동안 죽지 않고 얼어 있다가 살아나 심지어 자손까지 퍼뜨렸다. 공포 영화 속 좀비가 증식까지 한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다행히 사람이 아니다.

러시아 토양빙설학연구소의 스타스 말라빈 연구원은 지난 7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2만4000년 전의 윤충(輪蟲)을 발견해 소생시켰다”고 밝혔다.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 얼어붙어 있다가 다시 살아난 2만4000년 전 윤충./커런트 바이올로지

윤충은 연못이나 호수에 사는 무척추동물로, 한쪽 끝에 달린 섬모 꼬리를 수레바퀴처럼 돌려 움직인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말라빈 연구원은 “영구동토층에서 단순한 생명체인 박테리아들은 수천 년씩 생존하지만 이번 윤충은 뇌와 신경계를 갖춘 동물”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지난 2015년 시베리아 북동부 알라제야강 인근에서 땅을 3.5미터 시추하고 윤충 한 마리를 발견했다. 몸길이는 4분의 1밀리미터 정도였다. 주변 유기물의 연대를 측정해보니 2만3960년에서 2만4485년 사이로 나와 윤충도 그즈음 동토층에서 얼어붙었다고 추정했다.

윤충은 영양분이 있는 배양 접시에서 온도가 올라가자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짝짓기 없이 무성생식으로 자신과 똑같은 후손까지 증식했다.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에서 나온 2만4000년 전 윤충의 앞부분. 온도를 높이고 영양분을 주자 다시 살아나 자손까지 퍼뜨렸다./커런트 바이올로지

영구동토층에서 나온 생명체가 살아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2년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나온 3만년 전 미성숙 과일 조직이 다시 자랐다. 동물로는 2018년 역시 시베리아에서 4만2000년과 3만2000년 전의 선충이 긴 잠에서 깨어났다. 이번 연구는 윤충으로는 첫 소생 기록이다.

윤충은 지금도 상황에 따라 얼어붙은 상태로 휴면에 들어간다. 이번에 소생한 윤충의 후손과 오늘날 윤충을 같이 섭씨 영하 15도에서 1주일 동안 얼렸다가 해동해도 살아났다. 윤충은 민물이 갑자기 얼어붙어도 살 수 있도록 진화했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연구진은 윤충이 얼었다가 살아나는 능력을 이용하면 인간 세포나 조직, 장기를 극저온 보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말라빈 연구원은 미국 과학 매체 라이브사이언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윤충은 대사 작용을 일시 중단했다가 상황이 좋아지면 저온 휴면 상태에서 회복하는 것을 돕는 샤페론 단백질 같은 물질을 축적한다”며 “몸에 해로운 활성산소로부터 세포를 보호하고 DNA 손상을 수선하는 능력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