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이 박쥐나 돌고래처럼 물체에서 반사된 소리를 감지해 주변을 파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더램대 심리학과의 로어 탈러 교수 연구진은 지난 2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원’에 “시각장애인이 10주 훈련 끝에 박쥐나 돌고래처럼 혀에서 낸 소리의 반사파로 물체 크기와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쥐나 돌고래는 자신이 낸 소리가 물체에 부딪혀 돌아오는 것을 감지해 장애물을 파악하고 먹이를 찾는다. 이처럼 메아리로 길을 잡는 반향정위(反響定位) 원리는 잠수함의 소나(음파 탐지기)에도 적용됐다.
연구진은 21~79세 시각장애인 12명과 일반인 14명을 대상으로 10주간 2~3시간씩 20번에 걸쳐 반향정위 훈련을 했다. 혀를 차는 소리를 내고 반사파를 감지하는 방식이었다. 시각장애인은 별도로 훈련 후 3개월 동안 일상의 변화도 조사했다.
실험 결과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참가자 모두 반향정위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아래위 원판 중 큰 쪽을 찾는 시험은 처음에 정확도가 54%로 반반 확률이었지만, 20번째 훈련에서는 79%로 크게 향상됐다. 직사각형 판이 기울어진 방향을 판단하는 시험은 처음에 38%에 그치던 정답률이 20번째에는 69%로 높아졌다.
또 혀 차는 소리와 벽에 부딪혀 나오는 반사파를 헤드셋으로 들려주면서 키보드를 눌러 가상 미로를 통과하도록 했더니 처음에 119.3초 걸렸지만 나중에 48.42초까지 줄었다. 설문 조사에서 시각장애인은 모두 반향정위 훈련을 통해 이동 능력이 개선됐으며, 83%는 자율성과 행복감이 높아졌다고 답했다.
앞선 연구에서 시각장애인이 반향정위를 이용하면 뇌의 시각중추가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쥐나 돌고래처럼 사람도 소리로 주변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에 나이나 시각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훈련을 통해 반향정위 능력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누구나 나중에 시력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반향정위 훈련을 해둘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