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펭귄이 천적인 갈매기 둥지를 습격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펭귄이 알을 노리는 갈매기와 싸우기도 하지만 집단 번식지가 아닌 곳에서 이런 행동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극지연구소는 남극의 아델리펭귄이 천적인 남극도둑갈매기의 둥지를 습격하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10일 밝혔다.
극지연구소 김정훈 박사 연구팀은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인근 뫼비우스 곶에 설치한 무인 카메라로 아델리펭귄들이 도둑갈매기 둥지 3곳을 공격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화면 속 아델리펭귄은 도둑갈매기의 알을 밟아서 터뜨리기도 했다.
뫼비우스 곶이 있는 남극 로스해 일대는 전 세계 아델리펭귄의 32%가 번식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아델리펭귄의 알과 새끼를 사냥하는 도둑갈매기를 흔히 볼 수 있다.
연구진은 펭귄의 공격이 우발적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도둑갈매기는 먹이를 찾아 펭귄 둥지를 공격하지만 펭귄은 다른 조류의 알이나 새끼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호기심이 많고 호전적으로 알려진 아델리펭귄 무리가 침입자에게 보내는 도둑갈매기의 경고음에 이끌려 접근했다가 우발적으로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무인 카메라가 설치된 지역도 가장 가까운 아델리펭귄 집단 번식지와 17㎞이상 떨어져 있어서 새끼를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남극 로스해는 수십 만 마리의 아델리펭귄과 황제펭귄이 서식하는 남극특별보호구역이다. 펭귄 이외에도 남극이빨고기(메로)를 비롯한 어류 95 종과 수십 종의 크릴, 물범, 고래, 바닷새 등이 살고 있다. 생태학적 가치가 높아서 로스해를 보호하고 연구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김정훈 책임연구원은 “천적을 공격하는 아델리펭귄의 이번 사례처럼 남극 생태계에는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다”며 “무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활용해 남극동물들의 행동과 생태의 비밀을 풀어내는 연구를 계속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달 국제학술지 ‘생물다양성(Diversity)’ 특별호 ‘로스해 해양보호구역의 생물다양성’ 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