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을 모방한 식물성 플라스틱이 일상에서 널리 쓰이는 1회용 플라스틱 포장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번에 개발된 식물성 거미줄 플라스틱은 내구성과 안정성이 기존 플라스틱과 대등할 뿐 아니라 다 쓰고 나면 가정에서도 쉽게 분해돼 소비자들이 쉽게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화학과의 투오마스 놀레스 교수 연구진은 지난 1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거미줄의 구조를 모방해 다양한 1회용 제품에 쓰이는 플라스틱을 대체할 식물성 재료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강철보다 질긴 거미줄을 모방
2018년에 전 세계에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는 3억4000만 톤에 이른다. 그 중 46%가 포장재로, 대부분 자연에서 분해되지 않는 1회용이었다. 2050년까지 식품 수요가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포장재 쓰레기도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연구진은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미줄에서 지혜를 얻었다. 놀레스 교수는 오랫동안 인체에서 단백질 구조가 변하면서 알츠하이머 치매 같은 질병을 유발하는 과정을 연구했다. 그러던 중 역시 단백질로 만들어진 거미줄이 약한 분자 결합에도 불구하고 강철보다 질기다는 데 주목했다. 같은 방법을 이용하면 튼튼하면서도 생분해되는 친환경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거미줄이 튼튼한 것은 수소 결합이 촘촘하면서도 규칙적으로 배열됐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또 거미 단백질이 물에 녹은 상태로 있다가 거미줄로 뿜어져 나오면서 튼튼한 구조로 자기조립 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놀레스 교수는 식품 산업에서 나오는 콩 단백질 폐기물을 이용해 거미줄과 같은 구조의 단백질 중합체를 만들었다. 연구진은 “튼튼한 거미줄로 플라스틱을 대체하려는 연구는 이전에도 있었다”며 “하지만 우리는 거미 없이 같은 특성을 구현해 이른바 ‘식물성 거미줄’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가정에서도 쉽게 생분해 가능
플라스틱은 사슬 구조가 반복된 중합체이다. 자연에서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중합체가 있다. 섬유소 같은 탄수화물 중합체는 강도를 높이려면 사슬들을 이어주는 화학반응이 필요하다. 반면 단백질 중합체는 자기조립 과정을 통해 화학적 변형 없이도 거미줄처럼 강한 재료가 될 수 있다. 화학물질을 쓰지 않아 그만큼 환경에 더 안전하다.
연구진은 콩 단백질 폐기물에 아세트산과 물을 섞고 고온에서 초음파를 쏘아 고루 녹였다. 그러자 수소 결합이 생기면서 분자 결합이 단단해졌다. 다음 단계에서 용매를 제거하자 수용성 필름이 만들어졌다. 분석 결과 거미줄을 모방한 식물성 필름은 비닐봉지에 쓰이는 기존 폴리에틸렌 필름과 대등한 특성을 보였다.
특히 거미줄을 모방한 식물성 플라스틱은 생분해가 더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전에도 여러 종류의 생분해 플라스틱이 개발됐지만 별도의 재처리 공장에서만 분해할 수 있었다. 이번 플라스틱은 가정에도 쉽게 분해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영국 포츠머스대의 홈 다칼 교수는 “친환경 제조 공정과 지속가능한 재료를 이용해 식물성 플라스틱을 만들어 에너지 소비를 크게 줄였다는 점이 이번 연구의 가장 뛰어난 점”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거미줄을 모방한 식물성 플라스틱을 상용화하기 위해 삼플라(Xampla)라는 회사를 세웠다. 삼플라는 연말까지 식물성 거미줄 플라스틱으로 만든 세제 포장재, 식품 포장재 등 다양한 1회용 포장재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