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주 스타트업 ‘렐러티비티 스페이스’는 지난 8일 재사용 로켓 ‘테란R’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이 로켓의 특징은 회사가 개발한 3D(입체) 프린터로 엔진을 포함한 모든 부품을 제작하는 것이다. 3D 프린터를 활용해 부품 수를 기존 로켓의 100분의 1로, 로켓 제작 기간은 60일 이내로 줄이는 것이 회사의 목표다. 높이 66m에 최대 2만㎏을 실어나를 수 있는 테란R은 2024년 발사될 예정이다. 렐러티비티 스페이스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최근 투자금 6억5000만달러(약 7200억원)도 유치하며 스페이스X의 뒤를 잇는 우주 업체로 평가받고 있다.
민간 우주 시대가 도래하며 우주 산업에서 3D 프린팅 기술이 각광받고 있다. 로켓 제작부터 우주정거장 유지·보수, 우주 식민지 건설, 식량 생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3D 프린팅 기술이 개발 중이다. 또 대규모 투자와 기업 공개를 통해 우주 3D 프린팅 산업에 큰돈이 몰리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2018년 13억5910만달러(약 1조5000억원)였던 항공우주 3D 프린팅 시장은 연평균 22%씩 성장해 2026년에는 67억4550만달러(약 7조5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3D 프린터로 개발 비용·시간 단축
3D 프린터는 탄소복합재 같은 소재를 층층이 쌓아 굳히는 장치다. 우주 기업들이 3D 프린팅을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개발 비용과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로켓 부품은 주물로 찍어내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한 예로 로켓 엔진은 수천 개의 부품을 제각각 만들어 조립해야 한다. 하지만 렐러티비티 스페이스는 3개의 부품으로 엔진을 만들었다. 테슬라의 CEO(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스페이스X도 로켓 ‘팰컨9’ 엔진 밸브를 3D 프린터로 제작해 몇 달이 걸릴 공정을 단 이틀로 줄였다. 주물 틀을 만들어 쇳물을 붓는 복잡한 과정을 단숨에 줄인 것이다.
게다가 3D 프린팅에 많이 쓰이는 탄소 복합재는 금속보다 강하면서도 가볍다. 뉴질랜드 우주기업 로켓랩은 탄소복합재로 고온·고압을 견디는 로켓 엔진을 개발해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3D 프린터만 있으면 우주에서도 원하는 부품을 언제든 만들 수 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수리가 필요할 때 지구에서 부품을 보내면 큰 비용과 시간이 든다. 민간 업체를 이용한다고 해도 한번 발사 비용은 수백억에 이른다. 미국 우주 기업 메이드인스페이스는 미 항공우주국(NASA)과 협력해 ISS에서 3D 프린터로 공구 렌치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지난해에는 세라믹을 잉크로 쓰는 3D 프린터를 ISS에 올려 보냈다. 중국공간기술연구원(CAST)도 지난해 5월 우주에서 3D 프린터로 벌집 모양의 구조물 제작에 성공했다.
◇이틀이면 주택 건설 가능
더 나아가 3D 프린팅 기술은 우주 식민지 건설에도 활용될 전망이다. 미국은 2024년에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고, 일론 머스크도 2050년까지 화성 식민지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인류가 다른 행성에 이주하더라도 현지에서 재료를 조달해 거주지를 건설할 기술이 필수적이다.
미국 우주 스타트업 아이콘은 달 먼지를 콘크리트와 같은 물질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회사의 3D 프린터는 단층 주택을 약 48시간, 비용은 1만달러(약 1100만원) 이하에 건설할 수 있다. 아이콘은 방사능과 극한의 온도를 견디는 우주 서식지 건설을 하는 것이 목표다. 또 다른 스타트업 AI 스페이스팩토리는 3일에 걸쳐 높이 약 4.57m의 집을 짓는 기술을 확보했다.
식량 생산도 가능하다. 이스라엘 대체육 개발 업체인 알레프 팜스는 2019년 ISS에서 고기를 만들었다. 동물에서 수집한 세포를 잉크로 사용해 고기와 맛과 질감이 유사한 조직을 만든 것이다. 동물을 키울 땅이나 물, 사료가 필요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지 고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3D 프린팅 기술이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고온·고압의 극한의 우주 환경을 견디면서 품질이 균일한 제품을 만들려면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