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스타트업 테이스트리는 수천 종의 와인에 포함된 성분을 분석했다. 전문가들의 와인 평가 결과와 함께 이를 인공지능(AI)에 학습시켰다. 테이스트리는 또 과일·채소, 기호식품들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해 소비자들의 와인 기호도 파악했다. 이 정보까지 추가로 학습시키자 와인의 향과 맛이 어떤 성분들에 좌우되는지 스스로 터득해 소비자 개인마다 안성맞춤인 와인을 제안할 수 있는 AI 소믈리에가 탄생했다.
소비자들은 와인 매장의 키오스크나 스마트폰 앱으로 AI 소믈리에의 도움을 받았다. 테이스트리는 “AI가 제안한 와인은 소비자 기호와 92% 일치했고, 그 결과 와인 구매 만족도도 45%나 높아졌다”며 “AI의 도움을 받으면 와인 판매가 20%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떤 와인이 시장에서 성공할지 몰라 고민이던 와인 업체들도 “AI가 와이너리와 소비자 수요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고 반기고 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최신호에서 “AI가 사람마다 다른 기호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와인을 제안해 와인 업계를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식품업계에서는 “테이스트리의 사례는 AI가 와인 시장뿐 아니라, 맥주나 담배, 향수 시장도 뒤흔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공지능이 맛·향 같은 인간의 주관적 감각 영역에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전문가에 맞먹는 감별 능력을 토대로 소비자 기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의료에서 농업·교육·금융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AI가 이제 식품산업에서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맥주맛 예측하고 조미료 새 맛 개발
미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아로믹스는 사람의 코에 있는 후각 수용체 400종을 복제해 다양한 향에 대한 반응을 빅데이터로 확보했다. 일종의 복제코를 통해 향기 시험을 한 셈이다. 이를 인공지능에 학습시켜 마시는 차 제조업체에서 전문 감별사를 대신할 계획이다. 이미 레몬 주스 감별에서 효능을 입증했다.
글로벌 IT 서비스 기업 IBM은 2019년 세계적인 식품업체 맥코믹과 조미료 공동 개발을 시작했다. IBM은 전자혀인 하이퍼테이스트로 맛을 분석한 결과를 AI에 학습시켜 최적의 맛을 내는 조미료를 찾고 있다. 덴마크 맥주업체 칼스버그는 효모와 발효 성분 자료만 주면 AI가 맥주 맛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4월 “기계가 맛을 평가하고 궁극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면 식품 생산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를 들어 AI와 센서기술을 이용해 상추 잎으로도 소고기 버거 맛을 낸다면 축산업으로 인한 열대우림의 파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식물성 대체식품을 만드는 칠레의 낫코는 AI로 식물 성분의 분자 구조를 분석하고 육류를 대체할 새로운 조합법을 찾고 있다.
◇농작물 생산 단계부터 변화 불러
AI가 맛과 향 분석에 도입되면서 농업도 바뀌고 있다. 콜롬비아의 스타트업인 데메트리아는 가공하지 않는 커피콩이 나중에 어떤 맛과 향의 커피를 만들지 예측하는 AI 기술을 개발했다. 이 회사는 먼저 볶지 않은 녹색 생두에 근적외선을 쏘고 반사파를 분석해 어떤 유기분자가 있는지 알아냈다. AI는 전문가들이 평가한 커피 향과 맛이 어떤 유기분자와 연관돼 있는지 파악했다. 이를 토대로 생두가 나중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재배 단계에서부터 원하는 품질의 커피인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대 연구진은 같은 방법을 딸기 농사에 적용했다. 지난 7년간 384명이 다양한 품종의 딸기를 평가했다. 동시에 이 딸기들에서 맛과 향을 내는 성분을 분석했다. AI는 두 자료를 취합해 재배 중인 딸기가 어떤 맛을 낼지 예측할 수 있었다. 플로리다대의 반스 휘태커 교수는 지난 4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원예 연구’에 발표한 논문에서 “사람의 딸기 품평을 AI로 미리 예측하는 것”이라며 “이는 더 좋은 맛을 가진 딸기 품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