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 우주망원경이 돌아왔다. 지난달 컴퓨터 고장으로 한 달 동안 가동이 중단됐지만 수리에 성공하면서 다시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고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17일 밝혔다. 허블은 설계 수명인 15년을 훌쩍 넘기며 지난 31년 동안 우주 관측을 해왔다. 블랙홀 관측과 우주 팽창 속도를 규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수리로 앞으로 몇 년은 더 활동할 예정이다. 과학자들은 허블이 올해 말 발사 예정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과 함께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주 나이 바로잡고 초거대 블랙홀 관측
지난달 12일 허블의 각종 과학 장비를 통제·조정하는 ‘페이로드 컴퓨터’가 고장 났다. 이로 인해 과학 장비들이 자동으로 안전 모드로 전환되면서 우주 관측이 중단됐다. 나사는 예비(백업) 장치를 통해 이 컴퓨터를 다시 가동하는 데 성공했다. 나사는 성명을 통해 “과학 장비를 작동 상태로 되돌렸고 이제 과학 데이터 수집이 재개된다”고 밝혔다.
1990년 발사된 허블은 최초의 우주망원경이다. 자외선에서 근적외선에 이르는 빛의 파장을 이미지로 기록할 수 있다. 지난 31년간 지구 상공 547㎞를 돌며 우주를 관측했다. 우주망원경은 지구 대기를 거치지 않은 빛을 보므로 지상 망원경보다 더 정확하게 우주를 관측할 수 있다. 해상도는 사람 눈보다 1000배 좋다. 뉴욕에서 도쿄의 두 반딧불이가 3m 떨어진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정도다. 허블을 ‘지구의 눈’이라고 하는 이유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허블 수리 과정을 마음 졸이며 지켜본 건 지금까지 우주 연구에서 워낙 큰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대표적 성과가 우주 나이 규명이다. 허블이 발사될 당시만 해도 우주 나이는 100억~200억년 사이로 대략적으로만 알려졌다. 과학자들은 허블이 수집한 별들의 자료를 토대로 우주 나이가 138억년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허블은 은하 중심에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발견하고, 기존 이론과 달리 우주 팽창이 빨라지고 있음을 규명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 밖에 먼 거리에 있는 외계 행성의 대기나 소행성 등도 관측했다. 이렇게 쌓인 관측 자료가 150만건에 이른다. 과학자들은 자료를 사용해 논문을 1만8000편 이상 발표했고 이 논문들은 다른 논문에 9만번 이상 인용됐다.
하지만 허블도 나이가 들면서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애초 설계 수명은 15년이지만 보수를 하면서 수명을 연장해왔다. 1993년부터 2009년까지 우주인이 다섯 번 수리 임무를 수행했다. 지난 3월에는 소프트웨어 오류로 일시 중단됐다가 나흘 만에 복구되기도 했다.
◇허블 뛰어넘을 제임스 웹 연말 발사
나사와 유럽우주국(ESA), 캐나다우주국은 허블을 보완할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발사를 준비 중이다. 차세대 우주망원경인 제임스 웹은 육각형 금빛 반사 거울 18개를 벌집 형태로 이어 붙였다. 주경의 지름이 6.5m로 2.4m인 허블보다 크다.
제임스 웹은 초기 우주의 탄생과 진화 과정을 밝힐 예정이다. 허블과 달리 제임스 웹은 지구에서 150만㎞ 떨어진 곳에 설치된다. 이곳은 태양·지구가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중력)과 물체가 태양 주위를 돌면서 밖으로 벗어나려는 힘(원심력)이 서로 상쇄돼 중력이 미치지 않는다. 이른바 ‘라그랑주 지점’으로 빛의 왜곡이 없는 곳이다.
특히 태양이 항상 지구 뒤에 가려진 곳이어서 햇빛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허블이 주로 10억 광년(光年·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이내의 빛과 행성을 추적했다면, 제임스 웹은 적외선 관측용으로 135억 광년 떨어진 아주 먼 곳에서 오는 희미한 적외선도 포착할 수 있다.
제임스 웹은 최근 주요 기능을 점검하고 거울 18개를 펼치는 시험도 마쳤다. 올해 3월로 잡혔던 발사 일정은 코로나 대유행 등으로 10월로 미뤄졌다가 다시 11월 이후로 늦춰졌다. 나사는 제임스 웹이 올해 말 발사되면 허블과 함께 우주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다고 기대한다.